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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 무대에서 꾸민 이 시대를 위한 성가[거실에서 콘서트]

입력 | 2020-06-02 03:00:00

서울시향 ‘#덕분에’ 콘서트
탤리스 환상곡, 기도처럼 들려




5월 29일 열린 서울시향 콘서트 ‘#덕분에’에서 단원들이 거리를 띄워 앉은 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유튜브화면캡처

“어찌하여 열방들이 분노하며, 백성들이 헛된 일들을 꾀하느냐?”

구약 성경의 시편 2편이다. ‘열방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세계 최강의 두 나라가 거센 파열음을 내고 있다.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못지않게 열강들의 각축이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 해로 훗날 기억될지도 모른다.

고대에 그랬듯이 시편 2편은 후세에도 자주 선율이 붙어 노래로 불렸다.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40번째 곡인 베이스 아리아가 가장 친숙한 곡이다. 영국 르네상스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토머스 탤리스(1505∼1585)가 작곡한 성가도 있다. 20세기 초 영국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는 이 성가의 주제선율을 따서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작곡했다. 섬세하게 나눈 현악 파트들이 마치 오르간과 같이 깊은 소리의 물결을 자아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5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콘서트 ‘#덕분에’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제한된 인원의 관객 앞에서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수도권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관객 없이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무대 위 거리 두기’도 도입했다. 연주자들은 1.5m 이상 서로 떨어져 앉았고, 연주자들과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후반부 모차르트 교향곡 39번에 참여한 관악 연주자 각각의 주변에는 투명판도 설치했다.

지휘자 벤스케는 마음이 가장 복잡했을 것이다.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외 미국 미네소타 교향악단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이 악단이 있는 미니애폴리스는 최근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 중 사망하게 만든 사건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오늘날 ‘열강’들은 내부의 문제들로도 큰 병을 앓고 있다. 본윌리엄스가 편곡한 르네상스 성가의 심오한 음향이 사색을 넘어 긴급한 기도처럼 들려왔다.

이 콘서트는 유튜브 ‘서울시립교향악단’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본윌리엄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원곡도 유튜브에서 주제어 ‘tallis why fum‘th in fight’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