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 국영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QP)으로부터 100척 이상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슬롯 계약(정식 발주 전 건조공간 확보하는 협약)을 따내자 2일 조선 업계는 “잭팟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한국이 기술, 품질 면에서 세계적인 LNG 운반선 강국임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방심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이 중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지만 중국도 4월 QP와 16척 슬롯계약을 맺으며 LNG 운반선 건조 능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중국 조선기업들이 내수에서 건조 경험을 쌓아 한국을 바짝 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LNG 운반선 분야는 한국이 45년 앞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카타르 LNG 프로젝트를 따내자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업계는 “LNG선 분야는 한국이 중국에 45년 정도 앞서 있을 만큼 초격차”라고 평가한다.
업계는 4월에 중국이 LNG 운반선을 슬롯 계약한 건 사실상 대가성 수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이 카타르산 LNG를 구매한 대가로 카타르는 중국에 배를 주문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LNG선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중국과 먼저 계약을 한 뒤 한국과의 협상에서 가격을 더 낮추겠다는 카타르의 전략도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보다 먼저 수주하자 업계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수주를 통해 LNG선 건조 실력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은 그동안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선박 가격을 낮춰 한국과 경쟁했지만 최근 중국 인건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년간 전 세계 대형 LNG선(17만㎥ 이상 급) 발주의 90% 이상을 쓸어 담았다. 최근 5년간 전 세계 LNG선의 74%를 한국이 수주한 것도 이러한 초격차를 반증한다.
●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LNG선 굴기
특히 중국은 정부가 조선업을 전략산업으로 보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조선소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조선소와 선사들에 각종 금융 혜택을 주면서 수주를 따내고 있다. 화물이나 원료를 처리할 수 있는 내수시장이 있다는 것도 발주를 하는 글로벌 기업들에는 매력적이다. 선박 건조 뿐 아니라 물동량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수주가 제대로 된 LNG선 건조 실적이 없던 중국의 레퍼런스(실적 경험)를 쌓는 계기가가 될 것이다. LNG선을 만들다보면 기술과 품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LNG 기술을 꾸준히 갈고 닦는 점도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한국은 지난 10년간 조선업 불황을 겪으면서 기초 체력이 바닥났다. 반면 중국은 자국 물량 등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며 “한국이 중국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LNG선 핵심원천 기술 확보, 친환경 스마트 선박 구축에 힘써야 하고 양질의 조선 인력을 확충하고 노사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도 해야한다”라고 지적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