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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윤미향, 이정희, 그리고 한명숙

입력 | 2020-06-03 14:26:00


윤미향이 1일 나비 모양의 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나비는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한다. 윤미향이 이사장이었던 일본군 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서 ‘백만인 나비달기 운동’까지 벌이며 팔았던 그 나비 배지다.

국회 출근 첫날인 1일 취재진에 둘러싸여 의원실을 나서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위안부 피해자한테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받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면, 보통사람 같으면 그 배지 가슴에 못 단다. “할머니들을 이용해 사욕을 챙겼다”는 직격탄을 받았으면, 도의적 책임에서라도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보통사람의 상식이다. 나비 배지를 부적처럼 붙인 채 온몸으로 사퇴를 거부하는 윤미향 모습에 역시 한사코 사퇴를 거부했던 통합진보당 이정희가 겹쳐보였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걸린 나비 목걸이. 동아일보DB


● 비례대표 지켜낸 ‘진보의 붉은 장미’

통진당은 2012년 총선에서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으로 일약 제3당에 올랐던 정당이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 이정희의 민주노동당,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 탈당파가 전격 합당해 흥행에 성공한 데다, 지역구에 민주당을 찍으면 비례대표는 통진당에 주는 ‘교차투표’가 많았기 때문이다.

총선 일주일도 안돼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폭로됐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비례대표 경선은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던 이정희는 그러나 다음 날부터 대표직 사퇴를 완강히 거부했다. 5월 4일 오후 2시에 시작된 통진당 전국운영위를 의장 자격으로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진행하며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표결을 막아낸 거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동아일보DB



합당 전 유시민이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필살기가 야권연대”라며 ‘진보의 붉은 장미’처럼 띄워 올린 이정희였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했던 이정희가 돌연 가시 본색을 드러내자 인터넷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했다. 진중권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정희 변신이다. 영화 ‘링’을 보는 듯 소름이 끼쳤다”고 했을 정도다.

● 17시간 진행 이정희, 진땀 흘린 윤미향


윤미향은 등원 하루 전날 해명성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야당에선 “잘못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자니 진땀이 나는 것”이라며 공격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 정도 심장 가지고는 정의연 운영 그리 못한다. 그건 갱년기 증상이었던 것이다.

해명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윤미향. 동아일보DB


어떻게 따낸 의원직인데 누구 좋으라고 물러나느냐, 윤미향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망신은 잠깐이되 권력은 영원하다. 이정희 역시 ‘당권파 패권주의’라는 비난도 못 들은 척 당권을 움켜쥐고 비례대표 이석기, 김재연을 지켜냈다.

2013년 9월 이석기 체포 때 정부가 제출한 국회동의안을 보면 이들에게 국회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통진당 사람들까지 이석기 보좌진으로 의정활동에 참여시켰다며 국회를 ‘남한 사회주의 혁명의 교두보로 인식’한다는 거다. 결국 이석기, 김재연이 의원 배지를 뗀 것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명령에 의해서였다.


● 국회는 진보의 밥줄, 혁명의 교두보

윤미향 의원실에도 정의연에 함께 있던 사람이 5급 비서관으로, ‘김복동의 희망’ 재단 사람이 4급 보좌관으로 혈세 연봉을 챙기게 됐다. 안타깝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살아 있지는 않는다. 윤미향과 정의연 식구들에게는 국회가 혁명의 교두보는 아닐지언정 먹고사는 교두보로 요긴한 셈이다.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복역 중인 이석기는 자기가 운영하는 선거홍보회사에서 돈을 빼내 빌딩을 사들여선 임대수익을 올린 혐의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추가 받았다. 사회변혁을 꿈꾼다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치사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동아일보DB



윤미향이 개인계좌로 기부금을 모으고 현찰로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건 ‘의혹’이라고 치자. 그러나 자기 남편의 신문사에 일감을 맡기고 정의연 돈을 지불한 것은 참 치사한 일이다. 심지어 이정희는 2012년 대선 후보를 선거 사흘 전에 사퇴해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먹튀 했다. 온 국민을 교화시킬 듯이 도덕성을 자부하는 이른바 진보가 돈 문제에선 트릿하기 짝이 없으니 작년에 먹은 송편이 올라오는 것이다.

● 한명숙과 그 남편이 키운 진보의 그늘

2012년 통진당과 이정희를 키워준 핵심 인물이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다. 2012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야권연대가 필수라며 이정희와 협상 끝에 지역구를 대거 양보해줬다. 친노와 운동권 86세대 위주 ‘정체성 공천’으로 민주당은 패배했고, 한명숙은 취임 반년도 못돼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낸해 9월 노무현시민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왼쪽부터)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일보DB



그러나 쉽게 사라지거나 잊혀질 한명숙이 아니다. 여성운동의 대모, 참여정부 총리 출신일 뿐 아니라 박성준이라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가 신영복이고, 박성준은 신영복의 ‘지도’를 받았던 사람이다. 신영복과 박성준은 1960년대 북한의 지령으로 결성된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산 전력이 있다(물론 두 사람은 통혁당을 부인했다. 그러나 “당시 보도 내용들이 기본적으로는 대개 사실”이라는 게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증언이다).

한명숙이 2015년 유죄 판결 뒤 복역까지 마친 뇌물사건에 대해 여권에서 재심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마음의 빚’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감 직전 한명숙도 윤미향, 이정희처럼 결백을 외쳤다. 그렇다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1억 원 수표가 왜 한명숙 여동생의 전세금에서 나왔단 말인가.

● 우리 편은 옳다. 왜? 진보니까!

끝내기 전, 반전이 있다. 2012년 통진당 사건으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백모 씨와 이모 씨는 유시민 계열 비례대표인 오옥만에게 대리투표를 몰아준 이들이었다. 원자료를 포렌식 기법으로 분석한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유시민은 참여당이 안고 온 부채 8억여 원을 통진당에 두고 탈당했다”며 “속된 말로 먹튀를 한 것”이라고 했다(신동아 3월호).

신동아 3월호 기사. 사진출처 신동아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이 나라 집권세력은 왜 그리 뻔뻔한지. 사람이 잘못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과는커녕 지적한 쪽을 되레 토착왜구로 공격하는 사악함은 통진당 때도 못 보던 일이다. 진영논리라고 할 수도 없다. 우파는 내부 문제가 생기면 잘라내기라도 했다. 좌파는 똘똘 뭉쳐 싸고돌아선 정의(正義)를 돌게 만든다.

신념이 옳고 순수하면 모든 행동은 선악을 초월해 항상 정당하다는 ‘신념의 윤리’는 언급하기도 싫다. 가장 본질적이고도 치사한 돈에 눈멀어 서로 봐주며 나라를 뜯어먹는 ‘좌파 네트워크 마피아 공화국’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