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이 1일 나비 모양의 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나비는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한다. 윤미향이 이사장이었던 일본군 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서 ‘백만인 나비달기 운동’까지 벌이며 팔았던 그 나비 배지다.
국회 출근 첫날인 1일 취재진에 둘러싸여 의원실을 나서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위안부 피해자한테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받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면, 보통사람 같으면 그 배지 가슴에 못 단다. “할머니들을 이용해 사욕을 챙겼다”는 직격탄을 받았으면, 도의적 책임에서라도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보통사람의 상식이다. 나비 배지를 부적처럼 붙인 채 온몸으로 사퇴를 거부하는 윤미향 모습에 역시 한사코 사퇴를 거부했던 통합진보당 이정희가 겹쳐보였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걸린 나비 목걸이. 동아일보DB
● 비례대표 지켜낸 ‘진보의 붉은 장미’
총선 일주일도 안돼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폭로됐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비례대표 경선은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던 이정희는 그러나 다음 날부터 대표직 사퇴를 완강히 거부했다. 5월 4일 오후 2시에 시작된 통진당 전국운영위를 의장 자격으로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진행하며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표결을 막아낸 거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동아일보DB
합당 전 유시민이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필살기가 야권연대”라며 ‘진보의 붉은 장미’처럼 띄워 올린 이정희였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했던 이정희가 돌연 가시 본색을 드러내자 인터넷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했다. 진중권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정희 변신이다. 영화 ‘링’을 보는 듯 소름이 끼쳤다”고 했을 정도다.
● 17시간 진행 이정희, 진땀 흘린 윤미향
윤미향은 등원 하루 전날 해명성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야당에선 “잘못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자니 진땀이 나는 것”이라며 공격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 정도 심장 가지고는 정의연 운영 그리 못한다. 그건 갱년기 증상이었던 것이다.
해명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윤미향. 동아일보DB
어떻게 따낸 의원직인데 누구 좋으라고 물러나느냐, 윤미향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망신은 잠깐이되 권력은 영원하다. 이정희 역시 ‘당권파 패권주의’라는 비난도 못 들은 척 당권을 움켜쥐고 비례대표 이석기, 김재연을 지켜냈다.
● 국회는 진보의 밥줄, 혁명의 교두보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복역 중인 이석기는 자기가 운영하는 선거홍보회사에서 돈을 빼내 빌딩을 사들여선 임대수익을 올린 혐의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추가 받았다. 사회변혁을 꿈꾼다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치사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동아일보DB
윤미향이 개인계좌로 기부금을 모으고 현찰로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건 ‘의혹’이라고 치자. 그러나 자기 남편의 신문사에 일감을 맡기고 정의연 돈을 지불한 것은 참 치사한 일이다. 심지어 이정희는 2012년 대선 후보를 선거 사흘 전에 사퇴해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먹튀 했다. 온 국민을 교화시킬 듯이 도덕성을 자부하는 이른바 진보가 돈 문제에선 트릿하기 짝이 없으니 작년에 먹은 송편이 올라오는 것이다.
● 한명숙과 그 남편이 키운 진보의 그늘
지낸해 9월 노무현시민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왼쪽부터)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일보DB
한명숙이 2015년 유죄 판결 뒤 복역까지 마친 뇌물사건에 대해 여권에서 재심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마음의 빚’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감 직전 한명숙도 윤미향, 이정희처럼 결백을 외쳤다. 그렇다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1억 원 수표가 왜 한명숙 여동생의 전세금에서 나왔단 말인가.
● 우리 편은 옳다. 왜? 진보니까!
신동아 3월호 기사. 사진출처 신동아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이 나라 집권세력은 왜 그리 뻔뻔한지. 사람이 잘못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과는커녕 지적한 쪽을 되레 토착왜구로 공격하는 사악함은 통진당 때도 못 보던 일이다. 진영논리라고 할 수도 없다. 우파는 내부 문제가 생기면 잘라내기라도 했다. 좌파는 똘똘 뭉쳐 싸고돌아선 정의(正義)를 돌게 만든다.
신념이 옳고 순수하면 모든 행동은 선악을 초월해 항상 정당하다는 ‘신념의 윤리’는 언급하기도 싫다. 가장 본질적이고도 치사한 돈에 눈멀어 서로 봐주며 나라를 뜯어먹는 ‘좌파 네트워크 마피아 공화국’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