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화장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마자 키가 178㎝쯤 되는 남자가 튀어나와 주점 위쪽으로 도망갔다.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3월 2일 오전 0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한 주점.
종업원 남성 강모 씨(23)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이렇게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경찰이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여성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저지른 건 바로 강 씨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주점 구조를 잘 아는 강 씨는 여성화장실이 창고와 바로 연결된다는 점을 이용해 이곳에서 몰래카메라 촬영을 해왔다고 한다. 이후 다른 여성을 촬영한 추가 범행도 드러났다.
● 화장실 구조 잘 아는 ‘내부자’ 범행
경찰에 따르면 여성화장실 구조를 잘 아는 업소 직원 등이 몰래카메라 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상당하다. 주점 종업원이던 강 씨 역시 여성화장실 창문 틈으로 불법 촬영이 가능하다는 걸 사전에 파악했다. 일을 하던 도중에도 잠깐씩 창고에 들어가 범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4월 16일 오후 7시경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도 종업원 이모 씨(29)가 여성화장실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설치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는 화장실 칸마다 비치된 휴지통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 채 넣어뒀다고 한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추가 촬영 영상은 없다”고 잡아뗐지만,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다수 영상을 추가 확보했다.
은행원이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범행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같은 달 20일 오후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빌딩 2층 공용화장실에서 은행원 A 씨(24)가 여성 B 씨(30)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모습을 촬영하다 검거됐다.
인근 은행에서 일하며 이 화장실 구조를 잘 알고 있던 A 씨는 수십 분 간 남성 화장실 칸에 숨어서 여성 전용 칸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몰래 촬영했다. 경찰은 “A 씨 휴대전화에선 지하철 계단에서 여성 신체를 촬영한 영상 등도 나왔다”고 전했다.
● 몰래카메라 10명 중 1명만 징역형
법무부가 2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된 7만4956명의 성범죄자와 2901명의 재범자 특성을 분석해 펴낸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13년 412건이었던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2018년 2388건으로 5.8배 늘었다.
김의지 형사전문변호사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몰래카메라 범죄자라도 초범 등을 이유로 법정에서 집행유예 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유사 범죄를 근절해 여성 안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죄질에 따라 처벌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성희기자 che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