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경제부 차장
요즘 금융감독 당국을 보면 오심 논란으로 시끄러운 야구판이 연상된다. 금융감독원의 징계에 금융회사와 경영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에 나선다. 라임펀드 사태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데도 진상조사는 축축 늘어지고 당국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신속한 조사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금감원이 오히려 ‘사적 해결’을 종용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금융사들이 라임펀드 피해자들에 대해 ‘선보상’에 나선 데는 금감원의 압박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신영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선보상 계획을 밝혔고, 나머지 판매사들도 이사회를 거쳐 논의할 예정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4월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과거 선보상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사례가 계속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금융회사가 자율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지난달 윤 원장은 “배임 이슈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적 화해’에 의해 (선보상을) 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금융투자업 규정상 ‘위법행위 여부가 불명확할 경우 사적 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선보상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비조치 의견서’를 금융회사들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의 성향이나 책임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차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배임 여부를 따지는 법정에서 “금감원이 눈감아 주기로 했다”며 ‘비조치 의견서’를 흔든다고 통할지 장담할 수 없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무턱대고 보상을 하는 사례가 쌓여 가면 자기책임 원칙을 근간으로 한 투자시장이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정작 금감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진상조사와 분쟁해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후 명확한 근거와 절차에 의해 보상을 진행하면 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조사에 착수해 반년이 지난 올해 2월에야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다. 본격적인 현장조사는 4월에야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지연된 점도 있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엄격한 잣대에 따른 일관되고 신속한 판정이다.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좋은 심판이 아니다. 엄하게 퇴장을 명한다고 권위가 확보되지 않는다. 금감원은 자본시장의 관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심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재영 경제부 차장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