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링골드 ‘타르 해변2’ (부분), 1990년.
‘타르 해변’은 여덟 살 흑인 소녀 캐시가 사는 뉴욕 할렘의 가정집 풍경을 묘사한 스토리 퀼트다. 1939년 어느 무더운 여름밤, 캐시 가족은 타르로 포장된 옥상을 해변 삼아 이웃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고 있다. 어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과 함께 잠이 든 캐시는 뉴욕 밤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있다. 식탁 위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 식물 화분으로 꾸며진 옥상,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은 가난하고 더럽고 위험한 동네로 알려진 할렘에 대한 편견을 뒤엎는다. 부자는 아니지만 즐겁고 단란하게 살아가는 캐시 가족의 모습은 사실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나왔다. 링골드는 가난한 할렘 출신이지만 가족의 사랑 속에 부족함 없이 자랐고, 당시 흑인 여성으로는 드물게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백인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차별을 당하면서 인종문제, 여성문제에 눈뜨게 된다. 링골드가 서구 전통 회화를 버리고 퀼트를 선택한 것도 흑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선대 할머니는 백인 농장주를 위해 퀼트를 만드는 흑인 노예였고, 엄마는 할렘에서 흑인을 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작가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싸구려 수공예품으로 전락한 퀼트를 고급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역사와 성차별 문제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다시 보니 그림 속 높은 빌딩들은 편견의 장벽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린 캐시를 통해 차별과 편견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높이 비상하고픈 이 땅의 모든 약자들의 꿈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