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2일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의혹의 기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기소 여부를 놓고 검찰 수사팀이 아닌 학계와 법조인, 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 위주로 구성된 심의위의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DB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불러 조사했으며, 이르면 이번 주 신병 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라는 예상 밖 카드를 꺼내면서 향후 검찰의 주요 일정 등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 다음 주 검찰시민위원회가 1차 관문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 재임 당시인 2017년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제도다. 같은 해 12월 대검찰청 예규로 운영지침이 제정됐고,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운영지침에 따르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경우 사건 관계인 등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할 수 있다.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 사회 각 분야 전문가 150∼250명 규모의 위원단이 현재 구성되어 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소집되면 이들 중 15명을 무작위로 추첨해 관련 현안을 비공개로 심의한다. 위원장은 양창수 전 대법관이 맡게 된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약 2년 동안 수십 건의 신청 중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받은 사례는 8건이었다. 2018년 4월 기아자동차 노조의 파업 업무방해 피소 사건을 시작으로 홈앤쇼핑 대표 횡령, 아사히글라스의 불법 파견 사건 등 일부 중소기업 사건도 포함됐다.
○ 이 부회장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 없다”
이 부회장은 검찰의 두 차례 조사에서 삼성바이오 관련 의혹 등에 대해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한 말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나돌자 최후의 수단으로 외부의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 싶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재계 관계자는 “검찰은 합병은 승계를 위한 것이란 전제를 먼저 깔아놓고 모든 것을 보니 제일모직이 당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했고, 그 중심에 제일모직이 지분 43.6%를 가진 삼성바이오를 놓고 보니 분식회계로 몰아간 것 아니냐는 게 삼성이 억울해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에 대해 시민들의 상식적 판단을 받고 싶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바이오 수사는 2018년 11월부터 약 1년 6개월 동안 이어졌다. 제일모직의 가치 평가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가치 평가가 중요한 이슈였고, 이를 의도적으로 높게 만들어 삼성물산과의 합병에 적용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2015년 합병 발표 직전 거래일의 제일모직 시가총액은 약 25조 원으로 코스피 6위였고, 옛 삼성물산의 시총은 8조6000억 원(32위) 수준이었다. 당시 제일모직의 자산은 삼성물산의 3분의 1, 매출은 5분의 1에 불과했는데도 시가총액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의 약 3배였던 것이다. 당시 자산 규모가 큰 삼성물산이 인수 대상이 되면서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켰다’는 말이 나왔고 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제일모직 최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 검찰 일정, 한 달 이상 밀릴 수도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사건 관계인이 신청한 경우엔 △수사 계속 여부 △기소 여부 △처분 종결된 수사의 적정성만을 심의할 수 있다. 이번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이 부회장의 신병 처리 수위를 결정할 권한은 없는 것이다. 외부 위원을 추첨하고 심의 절차에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한 달 가까이 이 부회장에 대한 신병 처리 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 이 부회장 측의 대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검찰은 향후 수사 일정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자칫 올 7월로 예정된 검찰 인사 때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신동진 shine@donga.com·배석준·김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