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상속 포기, 이럴 땐 어떻게?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
선입견과 달리 명도의 90% 이상은 원만한 타협으로 수월하게 끝난다. 명도를 거부하면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점유자도 순순히 협상에 응하게 되고, 대부분 적절한 이사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가끔씩 까다로운 점유자를 만나 곤혹을 느끼기도 한다. 명도의 유형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점유자가 다수이거나 반대로 점유자가 사망했거나 혹은 행방불명되는 등 협상의 상대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다. 특히 점유자가 사망했는데 상속권자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해 협상할 상대가 아예 없으면 더욱 곤란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면 의외로 수월하게 끝낼 수 있다.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 보니 상속권자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해 낙찰을 받아도 명도가 쉽지 않았다. 필자의 조언을 받은 A 씨는 시세보다 6000만 원가량 낮은 가격에 응찰해 13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8억8000만 원에 낙찰받았다. 명도의 부담 탓인지 차순위는 A 씨보다 5000만 원 이상 낮은 가격에 입찰했다. 명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잔금 지급 이틀 후, A 씨는 아무런 잡음 없이 명도를 끝낼 수 있었다. A 씨는 어떻게 명도를 진행한 것일까.
우선 A 씨는 상속 절차를 대리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대리인을 통해 현재 상속인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해 권리를 주장할 사람이 없다는 것과 소유자가 사망 전 요양원에 거주해 큰 짐 없이 일부 가구만 남아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또 대리인으로부터 임의로 문을 열고 들어가 명도를 진행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동산에 대한 처분권을 모두 양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틀 후 열쇠공을 불러 집 안으로 들어간 A 씨는 남아있는 동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뒀다. 전 소유자가 미납한 관리비를 정산하면서 모든 명도 절차를 마쳤다. 경매에서 최고난도라 여겨지는 유형의 명도를 단 이틀 만에 끝낸 것이다. 이후 산본신도시의 대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해 최근에는 호가가 13억 원까지 올랐다.
단지 A 씨의 행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명도가 어려울 수 있음에도 용기 있게 입찰했고, 상속포기 사건의 경우 대리인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협의를 진행했다. 또 대리인과 합의서를 작성해 주거침입죄 등 형사 문제를 미연에 방지했고 추후 분쟁을 대비해 동산 목록 작성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도는 핵심을 짚어내고 원리를 파악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