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여자친구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라임스가 지난해 발표한 ‘Violence’ 뮤직비디오 장면. 머스크와 그라임스는 올 5월 출산한 아기 이름을 ‘X Æ A-12 머스크’라 지어 화제가 됐다. 강앤뮤직 제공
임희윤 기자
#1. 이유는 이렇다. 머스크의 현재 여자친구는 캐나다 출신의 클레어 부셰(32)다. 부셰는 그라임스(Grim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꽤 유명한 가수. 그라임스는 때론 격렬한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과 청량감 있는 신스팝(synth-pop)을 결합해 노래한다. 종종 공포영화에나 어울릴 비명 소리도 삽입한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이고 미술과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담당하는 ‘DIY-키치-컬트’ 음악가. 거침없는 혼종(混種)음악에 대중적인 멜로디까지 결합해 평단의 사랑을 받는다. 4집 ‘Art Angels’(2015년)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고, 그해 영국 유명 음악잡지 NME가 ‘올해의 앨범’ 1위로 뽑았다. 뉴욕타임스도 ‘2015년의 앨범’ 3위에 올려놨다.
#3. 상상의 나래란 긴 법이다. 케이팝 가수를 아는 케이팝 관계자와 알고 지내는 나는 대강 세 다리, 그라임스는커녕 슬라임에도 관심이 없는 우리 어머니도 네 다리만 거치면 머스크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니 좀 얼떨떨하다.
#4. 서두에 오묘한 가사 일부를 적은 그라임스의 노래, ‘We Appreciate Power’는 올 2월에 그가 낸 5집 앨범 ‘Miss Anthropocene’의 수록 곡이다. 앨범명은 ‘미스 인류세(人類世)’란 뜻이다. 키치적 시청각 연출에 현학적 콘셉트를 콜라주하는 것도 그라임스의 특징. 그라임스는 한때 캐나다의 하버드라 불리는 맥길대에서 신경과학과 러시아어를 복수 전공했다. 머스크와 그라임스를 연결해준 것도 다름 아닌 사소한 학술적 농담이었다.
#5. 머스크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로코의 바실리스크’라는 음모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혁신적 인공지능(AI)이 자신의 육화를 돕지 않는 인간을 고문한다는 내용. 머스크는 로코(Roko)를 미술양식인 로코코(Rococo)로 비틀어 재치 있는 농담을 하고 싶었다. 구글에 ‘로코코 바실리스크’를 쳐 넣은 순간, 아뿔싸…. 천하의 ‘나, 머스크님’보다 무려 3년 전에 이 첨단 농담을 개발한 이가 있음을 발견했으니….
#6. 그가 그라임스였다. 이미 2015년 ‘Flesh Without Blood’ 뮤직비디오에 로코코 바실리스크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것. 머스크와 그라임스는 이를 계기로 메시지를 나누기 시작했고 농담을 나누었고 사랑을 나누게 됐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