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딥 컷]<3>한국인의 원형 탐구한 권순철 터미널-기차역-장터서 마주친 촌로의 초연한 얼굴 속엔 고난의 역사 이겨낸 숭고함이…
권순철의 ‘얼굴’(260×194cm·2010년)을 가까이서 보면 산맥처럼 겹겹이 쌓인 물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색채와 질감이 마치 추상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몇 발자국 물러서면 캔버스 위에 떠 있는듯한 얼굴이 보인다.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인식에서 출발해 그림의 논리를 고려하며 쌓아올린 작품이기에 가능한 효과다. ⓒ권순철
권순철의 한국적 원형 찾기는 얼굴과 넋.산 시리즈로 이어져 왔다. 위부터 ‘형제―한국인의 얼굴을 찾아서 1’(1979년), ‘수인선 할머니’(2007년), ‘얼굴’(2009년), ‘넋’(2001년)‘몸―넋’(2003년), ‘넋-손’(2009년).
국내에서도 한때 ‘우리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나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대주의의 이분법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소수의 영역이었다.
권순철은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한국인의 얼굴과 넋, 산을 그리며 원형(原型)을 찾아갔다. 병원 기차역 시장 같은 길거리 스케치로 시작한 얼굴에 6·25전쟁, 4·19혁명 등의 역사가 얽혔다.
1960∼1990년대 거리에서 이어진 얼굴 스케치. 초기에는 해부학적 골상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권순철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자연스러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며 몰래 스케치를 했다. 자신이 모델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아챈 행인이 그의 스케치북을 뺏으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권순철의 ‘얼굴’은 한국인의 고통 기쁨 울분 즐거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보편적 인류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1944년 경남 창원 출생
▽1984년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
▽2003년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개인전
▽2006년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미술관
‘경계선: 소나무협회 그룹전’
▽2016년 대구미술관 개인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