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반성한다고 하나 내용을 보면 여전히 성폭행을 부인”
의료인 성폭력 근절 전북지역 대책위원회가 5일 오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전 전북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자친구를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전 전북대학교 의대생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5일 법정 구속됐다.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주)는 이날 강간과 상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24)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원심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장애인복지시설 각 3년간 취업제한 명령은 그대로 유지했다. 1심에서 집행 유예를 선고받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A 씨는 이날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원심에서부터 당심에 이르기까지 표면적으로는 반성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피해자를 강간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라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의대생 A 씨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강간한 사건으로 상당히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또 “음주운전을 해 사고를 내고 상대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상해를 가한 범죄 역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 A 씨를 향해 “수감 생활을 하면서 반성하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1심 “징역 2년·집유 3년…처벌 전력 없어”
A 씨는 전북의대 재학 중이던 2018년 9월 3일 새벽 여자친구인 B 씨의 원룸에서 B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B 씨를 추행하다가 “그만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라는 말에 격분, B 씨의 뺨을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졸랐다. 이후 폭행으로 반항을 못하게 된 B 씨를 성폭행했다.
A 씨는 성폭행을 당한 B 씨가 “앞으로 연락도 그만하고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화가 난다며 다시 폭행했다. B 씨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해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혔다.
1심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 등을 참작해 피고인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합의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는 점, 피고인 가족들이 선처를 간곡하게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은 A 씨가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은 없지만, 과거 성폭력 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아 기소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 씨의 왜곡된 성 의식이 범행에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항소심 “과거에도 강간치상 사건…조건만남 가능성”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2015년에도 미성년자 강간치상 혐의로 피소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며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결과 피고인은 소개팅앱을 통해 미성년자가 포함된 다수의 여성과 조건만남을 했거나 시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부분이 수사로 미치지 않아 유죄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에 비춰보면 평소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성적 도구의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또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덕목을 갖춰야 할 예비 의사임에도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까지 휴학하는 등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불리한 문자메시지를 삭제하는 등 범행 사실을 왜곡하고, 이 같은 거짓 진술로 피해자가 수사기관과 법정에 출석하는 등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또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덕목을 갖춰야 할 예비 의사임에도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까지 휴학하는 등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불리한 문자메시지를 삭제하는 등 범행 사실을 왜곡하고, 이 같은 거짓 진술로 피해자가 수사기관과 법정에 출석하는 등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재판 내내 “피해자와는 사실혼 관계”라며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수사 기록 등을 비춰볼 때 강간이 명백하다”고 일축했다.
전북대학교 의대생 성폭력 사건해결 및 의료인 성폭력 근절 전북지역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의료인 성범죄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스1
시민단체 “성범죄 가해자들에 경종 울리길”
A씨가 법정 구속되자 시민사회단체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북여성단체연합 등으로 구성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초범이라고 감경되는 것은 문제”라며 “이미 언론을 통해 가해자로부터 학창 시절 성폭력 당한 경험을 얘기한 피해자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성폭력 사건은 더 이상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감형을 해주는 관대한 사법부를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다”며 “오늘의 선고 결과가 3심에서도 당연히 유지되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성폭력 사건은 더 이상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감형을 해주는 관대한 사법부를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다”며 “오늘의 선고 결과가 3심에서도 당연히 유지되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언론 보도를 통해 1심 판결을 접한 전북대는 지난달 4일 의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A 씨에 대해 제적 처분을 내렸다.
서한길 동아닷컴 기자 stre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