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창간 때부터 ‘문화주의’를 주창한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깊다. 동아일보는 첫 문화사업으로 5월 4일 지금의 YMCA회관에서 경성(서울) 최초의 서양음악회를 열었다. 야나기의 부인이자 성악가(알토)인 가네코(柳兼子·1892∼1984)의 독창회였다. 장안의 화제를 모은 음악회에는 1300여 명이 몰렸고 이듬해에도 여러 차례 열렸다. 2005년에는 이 부부의 장남 무네미치(柳宗理) 일본민예관장이 어머니의 기록을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가네코’를 동아일보에 보내와 이듬해 일민미술관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야나기가 1922년 8월 동아일보에 5회에 걸쳐 게재한 광화문 철거 반대 기고문 ‘장차 잃게 된 조선의 한 건축을 위하여’의 육필 원고가 발굴됐다. 여기에는 사전 검열로 신문에 실리지 못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 당시 일제는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지으면서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철거하려 했다. 그는 “일본이 조선에 합병돼 에도(江戶)성이 헐린다면 일본인들은 이 무모한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이라며 “이와 똑같은 일이 지금 경성에서, 강요받는 침묵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양국에서 발표된 이 기고문은 큰 반향을 일으켜 광화문은 1926년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져 보존됐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