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5일 단독으로 박병석 국회의장을 선출한 뒤, 박 의장(가운데) 주재로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의장실에서 회동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우열 정치부 차장
궁금증을 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청와대, 정부가 노무현의 후예인 야당(민주당)을 대하는 태도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당시 민주당은 ‘백해무익’한 존재였다. 공사석에서 의원들의 얘기를 종합한 민주당의 정의(定意)는 “정치공작에만 능한 무책임한 종북세력”이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무시와 비하의 발언들이 넘쳐났다. “민주당은 언론 플레이만 하며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고,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엔 사사건건 태클만 거는 세력”이었다.
실제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지역구 66석에 비례대표 15석)은 지금 통합당보다 더한 궤멸적 수준의 패배를 당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친박 무소속 12명에 이인제 최연희 강길부 김광림 김세연 의원 등 친여 무소속까지 합치면 개헌선을 넘는 202석, 중도성향의 창조한국당(3석)까지 우호세력으로 보면 205석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민주당(81석)과 민주노동당(5석·정의당의 전신)의 협조는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 통합당 내에서 “그때 ‘분권형 개헌’을 제대로 추진했어야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53년 만의 여당 단독 국회의장 선출을 보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10년 전엔 거대여당 소속의 특임장관(정무장관)이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떤 분 자녀 결혼식에 갔는데 주 장관이 왔더라. 주 장관이 제 전화번호를 자꾸 달라고 해서 ‘이분이 국정운영 하는 데 조언을 구하려 하는구나’ 싶어 평소 잘 주지 않지만 그때는 드렸다. 그런데 전화는 한 번도 안 오고 청와대 등에 대한 홍보 스팸 메일만 오더라”고 했다. 일부 과장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야권의 감정과 여권의 인식을 보여주는 예는 될 수 있겠다.
2010년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신년 라디오 연설에서 “브레이크 없는 정부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국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을 독점하면서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았다”며 대국민 호소에 들어갔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한나라당은 내부 계파갈등과 대통령 탄핵, 연이은 선거 패배를 거치며 10년 만에 참담한 지경의 한 줌 야당이 됐고, 민주당과 우호세력은 190여 석 거대여당으로 재탄생했다. 요즘 통합당 지도부는 “집권여당의 폭주를 막아내는 힘은 이제 국민밖에 없다”며 10년 전 민주당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 단독으로 국회의장을 선출할 때 민주당은 예정된 오전 10시에서 단 1분도 야당을 배려하거나 기다리지 않았다. 10시 정각 거침없이 본회의를 열어 표결에 들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못해 섬뜩한 느낌까지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헌법과 국회법을 지킨다”는 그 명분을 내세웠지만, 2008년엔 법정시한 두 달 반 뒤에야 ‘폭주’하던 한나라당과 원구성 협상을 끝낸 뒤 “협상이 대단히 잘됐다”고 평가한 민주당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선 무엇으로 포장하더라도 폭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을 잊은 민주당은 10년 후를 생각하지 않고, 10년 전의 한나라당은 10년 후를 예상 못 하고 폭주의 쳇바퀴를 도는 게 정치이고 권력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