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 되면 각종 매체에 유해 발굴과 관련한 미담이 실리곤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는다. 전사자에 대한 슬픔은 마르지 않고, 유해를 찾는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보다 더 본질적인 교훈, 전쟁이 남긴 역사적 교훈은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잊고, 불편해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병력이 부족해지자 영국의 국방장관 키치너는 자원병 모집을 결정한다. 처음 목표는 10만 명이었는데, 순식간에 60만 명이 모였다. 당시에는 이들을 ‘키치너 부대’라고 불렀다. 전통적으로 충(忠)과 국가의식이 강력하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자원 행렬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겠지만, 국민국가가 탄생한 지 200년이 안 되던 유럽에서는 놀라운 현상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불타는 애국심은 정부와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터졌다. 1차 대전은 최악의 살상극이었다. 그 원인은 발달한 무기 체제에 대해 전술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탓이다. 무모한 전술과 살육전에 병사들은 분노했다. 전쟁이 아니라도 정부와 사회의 기득권층이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면 외면받지 않을 수가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