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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갈 때 조심하자[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1〉

입력 | 2020-06-09 03:00:00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1999년 KAIST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김영삼 씨가 동료들과 종잣돈 150만 원을 들여 만든 온라인 동창회였다.

당시만 해도 아이러브스쿨을 모르면 주변으로부터 ‘간첩’ 취급을 받았고, 아이러브스쿨은 최단기간 500만 명의 회원을 모집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한 온라인 동창회는 오프라인 동창회로 이어지기도 했고, 그 오프라인 동창회는 ‘불륜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2001년 김 씨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영원할 줄 알았던 아이러브스쿨의 인기는 점점 시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브스쿨이 망하는 동안 ‘싸이월드’라는 개인 홈페이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싸이월드의 창업 시기도 아이러브스쿨과 비슷했지만, 싸이월드는 아이러브스쿨보다 개인적이면서 내밀한 소통의 장이었다. 호감이 가는 상대에게 먼저 일촌을 신청하고, 서로 도토리를 주고받으며 친밀감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애용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델인 셈이다. 그 무렵만 해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의 첫마디가 인사 대신 “싸이 하냐?”였으니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잘나가던 싸이월드도 며칠 전 영구적으로 폐쇄됐다. 싸이월드에 올려둔 사진과 일기를 미리 백업해두지 않은 가입자들은 하루아침에 세상을 모두 잃은 것처럼 망연자실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나는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둘 다 가입하긴 했는데, 동창회를 나간 적도 없고 누군가와 도토리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자신과 싸이월드에서 일촌 관계라고 했다. 게다가 내 별명은 ‘미남 오빠’라고 했다. 그게 아마도 아내와 한창 연애할 무렵이었으니까 나는 아내가 나한테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 별명 내가 쓴 게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쓴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방역 선진국일 뿐만 아니라 SNS 선진국이었다. 물론 방역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바이러스보다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각종 혐오와 차별, 밤낮 없이 갈려 나가는 방역·보건 인력, 등교 개학을 둘러싼 갈등, 여러 경제적인 문제 등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일상을 잘 유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방역에 성공한 편이다.

그런데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는 왜 망했을까.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잘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교훈을 더 얻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미남 오빠’라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서 방역을 잘하고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하마터면 큰 착각에 빠져 살 뻔했다.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