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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한 그룹-毒한 멤버 사이, 진짜 자아는?

입력 | 2020-06-09 03:00:00

방탄소년단 슈가 앨범 ‘D-2’ 논란으로 본 믹스테이프의 딜레마




어거스트 디(방탄소년단 슈가)가 지난달 발표한 믹스테이프 ‘D-2’ 표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전략) 너처럼 약하진 않지/×밥들의 걍 재롱잔치/솔까 ×나게 어이없지/싹 다 죽여 난 예의 없이 (중략) 입만 산 ××들/당장 놈의 목을 쳐, ah.’ ‘선비××들 면상에다 침을 칵 뱉어.’(‘대취타’ 중)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예명으로 지난달 발표한 믹스테이프 ‘D-2’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빌보드 앨범차트 11위, 싱글차트 76위(수록곡 ‘대취타’)로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빌보드의 양대 차트에 동시 진입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성과를 전하며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한 믹스테이프임에도 전 세계 팬들에게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 한편에서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믹스테이프가 가진 딜레마를 짚는 목소리가 나온다. ‘D-2’에 실린 곡 ‘어떻게 생각해?’에 미국 종교단체 ‘인민사원’ 교주인 짐 존스의 연설 일부를 삽입하면서 촉발했다. 인민사원은 신도 913명이 숨진 1978년 존스타운 집단자살 사건의 주체다. 논란이 불거지자 빅히트는 “연설 보컬 샘플은 해당 곡을 작업한 프로듀서가 특별한 의도 없이 선정했다. 아티스트 본인(슈가)도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해 당혹스러워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며 문제의 부분을 삭제했다.

글로벌 팝 스타가 샘플을 쓰면서 출처나 내용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문제이지만, 가수 본인이 아닌 소속사가 해명을 한 것도 ‘자유로운 개인 작업’이란 믹스테이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2018년 유엔 연설, ‘Love Yourself’ 앨범 시리즈 등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멤버 슈가(위)의 비정규 앨범인 믹스테이프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여러 공식 음원 플랫폼에서도 서비스된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믹스테이프라는 명칭을 통해 ‘아티스트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이란 이미지를 취하면서도 정작 논란이 생기니 ‘걸러내지 못한 불찰’이라는 취지로 소속사가 주체가 돼 해명했다는 것부터가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가사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슈가의 ‘어떻게 생각해?’는 이른바 헤이터(hater)에 대한 ‘디스(diss)’를 담은 곡.

‘(전략) ×도 관심 없네. 니 인생이 어중간한 것도/니가 망해서 똥통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도 (중략) 니가 ×된 것은 니 탓이지 no-no?/이 노랠 듣는 ******** 뭐 개빡쳐서 졸도.’

‘다 싸그리 Go fuck yourself, huh’라는 가사도 있다. 방탄소년단의 연작 앨범 ‘Love Yourself’에 익숙한 이들은 어리둥절할 만하다. 방탄소년단은 8일 온라인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에서도 “여러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등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평론가는 “아이돌이 믹스테이프에만큼은 자기 과시나 인신공격성 가사를 거칠게 담다 보니, 그룹 차원에서 오랫동안 유지한 선한 메시지와 배치되는 경우가 빈발한다”고 했다.

힙합에 기반한 그룹이 잇따라 나오며 국내 아이돌계에는 믹스테이프 발매가 잦아졌다. 김윤하 평론가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예전 믹스테이프들은 더 센 표현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면서 “소속사 입장에서는 개별 멤버의 창작 욕구를 해소시키면서도 본그룹의 이미지에 끼치는 위험 부담은 덜어내려는 전략일 것”이라고 했다. 강일권 평론가는 “대중적 그룹으로는 착한 메시지를 설파하다가 솔로 래퍼만 되면 분노 캐릭터가 되는 자아 분리는 케이팝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양상”이라면서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는 믹스테이프의 가사에 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