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고 있다. 2020.6.9 © News1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며 삼성이 기선제압에 나선 모양새다.
1년 8개월간 50여차례 압수수색과 430여회 소환조사 등을 거쳐 수사의 최종 단계에서 이 부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은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치명상을 입고 향후 수사의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승기를 잡은 삼성은 이달초 신청한 ‘수사심의위원회’에서 그간의 입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관계 소명과 이 부회장의 무혐의 입증을 위한 PT(프레젠테이션) 준비에 즉각 돌입해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 직후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원 부장판사의 판결은 그간 재계와 법조계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지적한 구속 사유 불충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여지가 남아있지만 우선은 삼성이 초반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 입장에선 사실상 ‘최후 목표’로 삼았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뿐만 아니라 최 전 부회장, 김 전 사장 등 나머지 2인에 대한 영장마저도 기각되면서 그간 진행된 1년 8개월간의 수사력에 대한 비판만 사게 된 형국이다.
원 부장판사의 판결문에 언급된 ‘영장 기각’ 사유에서도 검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해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수많은 영장전담판사들이 재벌 총수나 유력인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언급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할 만한 스모킹건을 확보한 듯 보였으나 결국 법원에선 검찰 측이 범죄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원 부장판사는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에서 제시한 20만쪽 분량의 수사기록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불구속 재판’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이 부회장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검찰이 자신했던 혐의 입증에 제동이 걸리면서 향후 보강수사의 전개 방향과 오는 11일로 예정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부의심의위원회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정상 수사심의위가 내리는 ‘수사 적정성’ 혹은 ‘기소 여부’ 권고는 강제력이 없으나 검찰이 거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검찰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고싶다”면서 수사심의위를 요청한 지 이틀만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검찰의 자체 개혁안을 스스로 무력화한 것이란 비판이 쏟아져서다.
현재로선 수사심의위가 개최될지조차 미지수이지만 만약 검찰이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는 향후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어서 검찰도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속영장 기각으로 힘을 받은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즉각 수사심의위에서 ‘무혐의’ 주장과 불기소 처분을 목표로 사실관계 소명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은 법원이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며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