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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일본 친구여, 그대는 역사도 정치도 잘못 알고 있다

입력 | 2020-06-09 11:40:00

1921년 3월 5일





플래시백
‘그대가 우리의 적인가. 아니다. 그대가 흉악한 사람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대의 가슴에도 따뜻한 정의 불이 붙고 그대의 눈에도 아름다운 눈물이 있는 줄을 확실히 믿는다.’ 동아일보 1921년 3월 4일자 1면 사설의 앞부분 문장입니다. ‘일본 친구여’ 제목으로 이틀간 상, 하로 실린 이 사설은 양식 있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성찰을 요구한 편지 형식이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승리 그리고 조선 식민지화를 거치면서 일본인의 자부심이 크게 높아졌던 점은 잘 아실 겁니다. 특히 일본 정계와 언론계는 조선의 문명개화를 도와주고 있다고 선전했죠. 열등한 조선인을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자세로 일본인과 똑같이 대한다고 했습니다. 사설은 ‘그럼, 좋다. 너희들 관점에서 한 번 보자’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취했죠.

‘상’은 유신 3걸의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정(情)의 위인이라고 했습니다. 정한론을 주장한 사람이죠. 에도시대 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고 전원 할복한 47인의 사무라이 의사(義士)도 거론했습니다. 출가해버린 부친을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고 함께 간 어머니마저 숨지자 제자가 되어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평생 모셨다는 이시도마루(石童丸) 이야기에는 눈물이 난다고 했죠. 역시 일본인은 정에 예민하고 의에 굳세다고 했습니다.

일본인 눈으로 보면 식민지 조선의 10년은 발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푸른 산은 물론 훌륭한 도로와 재판소 행정관 산업개발 교육진흥이 도입됐거나 시행되었죠. 조선의 암흑정치를 벗어나 총독정치가 시행된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은 은혜에 감사하고 태평가를 불러야 마땅한데도 왜 불만과 불평에 3·1운동까지 일어났느냐고 사설은 묻습니다.


오른쪽부터 데라우치 마사타케 1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2대 총독, 야마가타 이사부로 정무총감. 정무총감은 총독에 이은 2인자로 군림했다. 야마가타 초대 정무총감은 2대 총독과도 함께 일했다. 출처=매일신보 1918년 11월 2일자 1면.



‘하’는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온후하고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는 정직하다고 했습니다. 산하 간부들은 모두 신진 일류라고 추켜 주었죠. 무단통치를 자행한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보다 온건한 사이토를 임명해 일본이 성의를 보였다고 했습니다. 사이토는 묘지규칙과 도축장규칙을 개정했고 회사령과 태형 헌병제도를 없앴으며 신문 잡지를 허가했고 교육진흥과 학교증설에도 나섰다고 업적을 나열했죠. 일본인이 보기에도 흐뭇한 항목들입니다. 그럼 조선인들은 만족하고 기쁘게 순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사설은 지적했죠.

이제 사설의 주장이 나옵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총독정치를 자랑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일본은 역사를 잘못 알았고 정치를 잘못 깨달았다고 했죠. 조선의 과거는 조선인 스스로 충분히 혁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총독부가 과거보다 나은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조선인에게는 이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 이상이 무엇인지는 다들 아시겠죠?

또 사이토가 실천한 성심은 철저하지 못했고 모순과 충돌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어디 있으며 인권은 어디 갔고 조선의 산업은 떨고 있다고 비판했죠. 총독부는 신문 잡지를 허가한 뒤 걸핏하면 삭제와 압수 정간을 때려 골병들게 했습니다. 유학생 강연회가 열리면 경찰이 지키고 앉았다가 중지! 중지! 외치는 건 예사고 집회를 아예 허가하지 않기도 했죠. 경찰이 조선인을 함부로 고문할 때 인권은 말뿐이었습니다. 회사령을 없앴다지만 조선인 회사는 대자본의 일본 기업한테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습니다.


오른쪽부터 사이토 마코토 3대 총독,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 출처=매일신보 1921년 4월 16일자 1면.



그래서 사설은 요구합니다. 자유를 달라! 인권을 보장하라! 산업을 특별 보호하라! 일본인 편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니 일본인이 진정 친구라면 조선인의 마음도 헤아리라고 한 것이죠. 상대가 총독부라면 비판을 앞세웠겠지만 일본 국민이니까 이성적으로 호소했습니다.

요즘 일각에서는 이 사설이 총독부의 업적을 찬양한 비굴한 항복 선언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은 총독부가 압수한 사설이었습니다. 동아일보 논설·논평 중에서 압수당한 다섯 번째 글이었죠. 총독부를 찬양한 사설을 압수했다? 이상하지 않나요? 비난하는 쪽에서 글 전체의 흐름을 보지 않고 일부 문구를 골라 편한대로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를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합니다. 남의 흠을 억지로 일일이 찾아내는 ‘취모멱자(吹毛覓疵)’와도 멀지 않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日本親舊(일본친구)여 (下(하))
親(친)하고자 하되 不能(불능)


齋藤總督(재등총독)은 溫厚(온후)한 사람이오 水野總監(수야총감)은 正直(정직)한 사람이오 以下(이하) 幹部(간부) 各員(각원)은 모다 一流新進(일류신진)이라. 아! 日本親舊(일본친구)여. 그대는 이를 자랑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그 자랑이 無理(무리)가 안인 줄노 알며 中央政府(중앙정부)가 如此(여차)한 人物(인물)을 派遣(파견)한 것은 비록 政治的(정치적)의 許多(허다)한 理由(이유)가 잇다 할지라도 人物擇用(인물택용)에 果然(과연) 그 宜(의)를 得(득)한 것으로 아노라. 中央政府(중앙정부)가 在來(재래)의 武斷政治(무단정치)가 實(실)로 失敗(실패)에 歸(귀)함을 自覺(자각)하고 이를 改革(개혁)하야 朝鮮人民(조선인민)의게 幸福(행복)과 滿足(만족)을 주고자 하는 誠意(성의)가 잇섯는 것을 우리는 알겟노라.

비록 在來(재래)에는 中央政府(중앙정부)가 따라 그대들 一般國民(일반국민)이 朝鮮政治(조선정치)를 一武人(일무인)과 一行政官(일행정관)의게 委任(위임)하야 不顧(불고)하는 冷膽(냉담)이 잇섯스나 獨立運動(독립운동)이 勃發(발발)한 後(후) 果然(과연) 그 잘못을 깨닷고 來頭(내두)의 革新(혁신)을 自期(자기)한 것을 우리는 아노라. 朝鮮問題(조선문제)를 些少視(사소시)하지 아니하고 重大視(중대시)하며 아울러 一點(일점) 道義心(도의심)이 動(동)한 것을 吾人(오인)은 看取(간취)할 수 잇스니 此(차) 裏面(이면)에는 비록 吾人(오인)의 아지 못하는 許多(허다)한 政治的(정치적) 理由(이유)가 잇슬지나 우리는 그것을 剔抉(척결)코자 하지 아니하고 日本國民(일본국민) 中(중)에 『朝鮮不平(조선불평)의 爆發(폭발)』을 보고 驚愕(경악)하고 狼狽(낭패)하고 慚悔(참회)하고 革新(혁신)을 自期(자기)하는 誠意(성의)가 動(동)한 것을 깃버하고자 하노라.

아― 日本親舊(일본친구)여. 齋藤總督(재등총독) 以下(이하) 新總督府(신총독부) 幹部一同(간부일동)의 當時(당시) 抱負(포부)는 實(실)노 宏壯(굉장)한 줄노 우리는 생각하노라. (一·일)은 吾人(오인)의 誠心(성심)으로써 臨(임)하면 何事(하사)의 不成(불성)이 잇스리오. 日鮮(일선)의 融和(융화)는 可(가)히 期(기)할 바―오. (二·이)는 誠心(성심)이 發(발)하야 實際(실제) 民生(민생)의게 有益(유익)이 될 文化政治(문화정치)를 布施(포시)하면 朝鮮(조선)사람도 사람이리 엇지 感應(감응)할 바― 업스리오. (三·삼)은 日鮮(일선)의 融和(융화)는 東洋平和(동양평화)의 核心問題(핵심문제)이라. 日本(일본)을 爲(위)하야 朝鮮(조선)을 爲(위)하야 東洋平和(동양평화) 延(연)하야는 世界平和(세계평화)를 爲(위)하야 勇往猛進(용왕맹진)하리라 함이로다.

우리는 그 意氣(의기)의 壯(장)함을 衷心(충심)으로 讚揚(찬양)하노라. 이와 갓흔 日本國民(일본국민)의 誠意(성의)가 잇고 新當局者(신당국자)의 抱負(포부)가 잇슴으로 各樣(각양) 宣明(선명)이 有(유)하얏스며 屢次(누차) 諭告(유고)의 發表(발표)가 有(유)하엿도다. 或者(혹자)의 解釋(해석)하는 바와 가치 이 모든 것이 朝鮮人(조선인)을 欺瞞(기만)코자 하는 狡猾(교활)한 手段(수단)이라고 우리는 밋지 아니하노라. 아니라. 밋고자 하지 아니하노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生命(생명)은 實(실)노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오즉 깃버하고자 하노라.

在來(재래) 武斷政治(무단정치)가 秋霜(추상)갓핫스면 今次(금차)의 文化政治(문화정치)는 春風(춘풍)갓다 할 것이다. 確實(확실)히 服裝(복장)이 變(변)한 것가치 民衆(민중)에 對(대)한 官僚(관료)의 態度(태도)도 變(변)하얏도다. 傲慢(오만)은 恭順(공순)으로 不遜(불손)은 謙讓(겸양)으로 獨斷(독단)은 稽衆(계중)으로 變(변)하얏도다.

勿論(물론) 이와 갓흔 精神(정신)이 行政組織(행정조직) 全體(전체)에 貫通(관통)하야 流露(유로)된다 하기는 難(난)할 뿐 아니라 오히려 地方(지방)에서는 此(차)에 反對(반대)된 現象(현상)이 업지 아니하나 적어도 幹部(간부) 主腦者(주뇌자)의 態度(태도)는 이러하다. 우리는 此人(차인)을 對(대)할 時(시)에 胸襟(흉금)을 開(개)하고자 하며 此人(차인)은 또한 우리를 對(대)할 時(시)에 衷情(충정)을 披瀝(피력)코자 하는도디.

이는 官風(관풍)의 一端(일단)이어니와 그대는 實際(실제) 政治(정치)에 對(대)하야 如何(여하)히 觀察(관찰)하는고. 德政(덕정)이라 하며 文化政治(문화정치)라 하며 이에 一点(일점) 光明(광명)을 發見(발견)하는가. 吾人(오인)은 그대의 觀察(관찰)이 不正當(부정당)하다 하지 아니하노라. (一·일)은 墓地規則(묘지규칙) 改正(개정)이오. (二·이)는 屠獸場規則(도수장교칙) 改正(개정)이오. (三·삼)은 會社令(회사령) 撤廢(철폐)오. (四·사)는 笞刑(태형) 廢止(폐지)오. (五·오)는 憲兵制度(헌병제도) 撤廢(철폐)오. (六·육)은 言論(언론) 自由(자유)오. (七·칠)은 敎育振興(교육진흥) 學校增設(학교증설)이오. (八·팔)은 諮問機關(자문기관) 設置(설치)오. (九·구)는 監察官(감찰관) 民情視察官(민정시찰관) 等(등)의 新設(신설)이오. (十·십)은 日鮮人間(일선인간) 差別待遇(차별대우) 廢止(폐지)라. 이 모든 것은 文化政治(문화정치)의 內容(내용)이오. 當局者(당국자)의 『誠心(성심)』의 發露(발로)라. 吾人(오인)은 當初(당초)의 標榜(표방)을 實現(실현)코자 努力(노력)하는 當局者(당국자)의 其(기) 衷心(충심)을 諒(양)하노라.

日本親舊(일본친구)여. 그러면 朝鮮(조선)사람은 이에 滿足(만족)하며 悅服(열복)하야 그 幸福(행복)을 노래하는가. 在來(재래)의 不平(불평)과 鬱憤(울분)과 含痛(함통)은 모다 消散(소산)하고 和然自樂(화연자락)하야 그 生命(생명)의 暢達(창달)을 질기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참 『性(성)』에 依(의)하야 朝鮮(조선)사람은 손을 내밀어 日本(일본)사람과 握手(악수)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朝鮮(조선)사람이 멀리 서서 躊躇(주저)하는 것을 보노라. 그대 압헤서 是(시)라 하고 마음 가운데 스스로 非(비)라 함을 보노라. 親(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잇스되 能(능)치 못하는 것을 보노라. 아니라. 우리는 朝鮮(조선)사람이 依然(의연)히 마음 가운데 苦痛(고통)을 感(감)하는 것을 보노라. 日本親舊(일본친구)여. 그대는 今日(금일)의 平穩(평온)을 자랑하며 能事(능사)가 畢矣(필의)라 하는가. 우리는 말하노니 寺內時代(사내시대) 武斷政治(무단통치) 下(하)에서도 朝鮮(조선)사람은 十年間(10년간)을 平穩(평온)하얏다 하노라.

朝鮮(조선)사람의 依然(의연)한 苦痛(고통)이 無理(무리)한가. 그대가 萬一(만일) 그 苦痛(고통)을 아지 못할진대 吾人(오인)은 率直(솔직)히 말하리라. 總督府(총독부) 當局者(당국자)의 誠心(성심)은 誠心(성심)이며 그 誠心(성심)을 依支(의지)하야 改革(개혁)을 各方面(각방면)으로 期(기)하는 것은 事實(사실)이나 그가 徹底(철저)하지 못하고 不得己(부득기)의 矛盾(모순)과 事實上(사실상)의 撞着(당착)이 生(생)하는도다. 至今(지금)하야 言論自由(언론자유)가 어데 잇스며 集會自由(집회자유)가 어데 잇스며 人權保障(인권보장)이 어데 잇스며 産業上(산업상)의 朝鮮人(조선인) 保護(보호)가 어데 잇는가.

文化政治(문화정치) 標榜下(표방하)에 朝鮮(조선)사람은 勇躍(용약)하야 幾種(기종)의 雜誌(잡지)를 發刊(발간)하얏스나 大槪(대개)는 原稿(원고)의 押收(압수)를 當(당)하야 經營上(경영상) 困難(곤란)을 惹起(야기)하며 德政惠風(덕정혜풍) 下(하)에 各種(각종)의 集會(집회)가 生(생)하얏스나 事實上(사실상) 解散(해산)을 當(당)한 것과 無異(무이)하며 憲兵制度(헌병제도) 撒廢(철폐) 下(하)에 朝鮮人(조선인)은 果然(과연) 空氣(공기)의 自由呼吸(자유호흡)을 期待(기대)하며 人權(인권)의 確實(확실)한 保障(보장)을 希望(희망)하얏스나 警察(경찰) 橫暴(횡포)의 聲(성)이 依然(의연)하며 産業上(산업상) 朝鮮人(조선인)의 危機(위기)는 去益尤甚(거익우심)하며 日々(일일) 加一層(가일층)하야 到處(도처)에 悲慘(비참)한 狀況(상황)을 目睹(목도)하는도다.

우리는 當局者(당국자)의 無誠意(무성의)를 咀呪(저주)하는 者(자) 아니나 그러나 依然(의연)히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苦痛(고통)을 感(감)하는도다. 그대는 말하리라. 이 모든 拘束(구속)과 統制(통제)는 事勢(사세) 不得己(부득이)한 것이 아닌가. 朝鮮(조선)의 現狀(현상)을 觀察(관찰)하라. 吾人(오인)은 不得己(부득이)하야 現今(현금) 갓흔 政治(정치)를 施(시)하노라. 누가 朝鮮人(조선인)의 苦痛(고통)과 不幸福(불행복)을 바라는 者(자)―리오. 吾人(오인)의게 時日(시일)울 與(여)하라. 將來(장래)의 希望(희망)을 囑(촉)하라 하리로다.

日本親舊(일본친구)여. 우리는 그대와 討論(토론)코자 하는 者(자) 아니며 將來(장래)를 咀呪(저주)코자 하는 者(자)도 아니라. 오즉 衷情(충정)은 吐(토)하야 우리의 苦痛(고통)을 말하고자 할 뿐이라. 그러나 그대는 歷史(역사)를 잘못 아랏스며 政治(정치)를 잘못 깨다랏도라. 政治(정치)는 徒善(도선)이 아니라. 養民(양민)과 安民(안민)에 在(재)하며 歷史(역사)는 過去(과거) 記錄(기록)이 아니라 現在(현재)에 꼬리를 치면서 活動(활동)하는 生物(생물)이라.

모든 잘못의 根本(근본)이 오즉 一点(일점)에 在(재)하니 곳 『自己(자기)의 理想(이상)』대로 此(차)를 □코자 함이라. 理想(이상) 업는 政治(정치)는 盲目政治(맹목정치)이나 이와 同時(동시)에 『自已(자기)의 理想(이상)』만 固執(고집)하는 政治(정치)도 盲目政治(맹목정치)이라. 然則(연즉) 吾人(오인)의 바라는 바는 무엇인고. 吾人(오인)은 過大(과대)한 要求(요구)를 提出(제출)코자 하지 아니하노라.

言論集會(언론집회)의 自由(자유)를 徹底(철저)히 容認(용인)하며 人權(인권)의 保障(보장)을 徹底(철저)히 施行(시행)하며 産業上(산업상) 特別保護(특별보호)를 加(가)하는 것이라. 人權(인권)을 保障(보장)하며 自由(자유)를 容認(용인)하야 政治上(정치상) 紛亂(분란)이 生(생)하나뇨. 萬一(만일) 그러하다 하야 此(차)를 抑壓(억압)하면 平和(평화)가 來(래)하는가. 自由(자유)는 實(실)노 生命(생명)의 本質(본질)이오 人權(인권)은 實(실)노 生命(생명)의 確認(확인)이라. 此(차)의 壓抑(압억)은 永遠(영원)한 不平(불평)과 苦痛(고통)의 原因(원인)이 되나니 苦痛(고통)하는者(자) 不平(불평)하는 者(자) 엇지 和然自得(화연자득)함을 得(득)하며 親愛融和(친애융화)함을 得(득)하리오.

우리는 眞實(진실)노 그대가 政治(정치)의 義(의)를 行(행)하야 養民(양민)과 安民(안민)을 圖(도)하되 그 結果(결과)를 참말 『時日(시일)』의 自然的(자연적) 解決(해결)에 求(구)하기를 바라노라.

日本親舊(일본친구)여. 그대는 東洋平和(동양평화)를 思(사)하는가. 우리는 더욱 眞正(진정)한 東洋平和(동양평화)의 必要(필요)를 感(감)하노라. 此時(차시)에 吾人(오인)의 苦痛(고통)을 그대의게 率直(솔직)히 告(고)함이 엇지 無益(무익)한 바―리오. 우리는 本來(본래) 天性(천성)의 『誠(성)』인 것을 밋고 衷情(충정)을 그대의게 告(고)하노라. 그대는 깁히 생각할지어다(完·완).



현대문

일본 친구여 (하)
친하고 싶지만 친할 수 없다


사이토 총독은 온후한 사람이고 미즈노 정무총감은 정직한 사람이며 그 아래 간부 각 직원은 모두 일류의 신진이다. 아! 일본 친구여. 그대는 이를 자랑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그 자랑이 무리가 아닌 줄로 알며 중앙정부가 이 같은 인물을 파견한 것은 비록 정치적으로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인물의 선택과 기용에 과연 마땅함을 얻은 것으로 안다.

중앙정부가 종전의 무단정치가 참으로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고 이를 개혁하여 조선인민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려고 하는 성의가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겠다. 비록 종전에는 중앙정부를 따라 그대들 일반국민이 조선정치를 무인 한 명과 행정관 한 명에게 맡겨 돌아보지 않는 냉담함이 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과연 그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의 혁신을 스스로 약속한 것을 우리는 안다. 조선 문제를 사소하게 보지 않고 중대하게 여기며 아울러 한 점 도의심이 움직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비록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정치적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들추어내려 하지 않고 일본 국민 가운데 『조선 불평의 폭발』을 보고 경악하고 낭패하고 참회하고 혁신을 약속하는 성의가 움직인 것을 기뻐하고자 한다.

아― 일본 친구여. 사이토 총독 이하 새로운 총독부 간부 일동의 당시 포부는 참으로 굉장했던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①은 우리가 성심으로 대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일본과 조선의 융화는 마땅히 이루어질 것이다. ②는 성심이 나타나 실제 민생에 유익이 될 문화정치를 베풀면 조선 사람도 사람이므로 어찌 마음이 움직일 일이 없겠는가. ③은 일본과 조선의 융화는 동양평화의 핵심문제이다. 일본을 위하여 조선을 위하여 동양평화 멀리는 세계평화를 위하여 용감하고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 장한 의기를 충심으로 찬양한다. 이와 같은 일본 국민의 성의가 있고 새로운 당국자의 포부가 있었기에 여러 가지 분명한 뜻이 나타났으며 여러 차례 알림이 발표되었다. 어떤 이가 해석하는 것과 같이 이 모든 것이 조선인을 속이려고 하는 교활한 수단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아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생명은 정말로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오직 기뻐하고자 한다.

종전 무단정치가 가을서리 같았다면 지금 문화정치는 봄바람 같다고 할 것이다. 확실히 옷차림이 변한 것 같이 민중에 대한 관료의 태도도 변하였다. 오만은 공손으로, 불손은 겸손으로, 독단은 자문으로 변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정신이 행정조직 전체에 두루 통하여 나타난다고 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지방에서는 이것과 반대되는 현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주요 간부들의 태도는 이렇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열고자 하며 이 사람은 또한 우리를 대할 때 충정을 나타내려고 한다.

이는 관청 분위기의 일부이거니와 그대는 실제 정치에 대하여 어떻게 관찰하는가. 덕정이라 하며 문화정치라 하며 여기에 한 가닥 빛을 발견하는가? 우리는 그대의 관찰이 정당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①은 묘지규칙 개정이다. ②는 도수장규칙 개정이다. ③은 회사령 철폐이다. ④는 태형 폐지이다. ⑤는 헌병제도 철폐이다. ⑥은 언론자유이다. ⑦은 교육진흥 학교증설이다. ⑧은 자문기관 설치이다. ⑨는 감찰관 민정시찰관 등의 신설이다. ⑩은 일선인 사이의 차별대우 폐지이다. 이 모든 것은 문화정치의 내용이고 당국자의 『성심』의 발로이다. 우리는 당초 표방한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당국자의 그 충심을 믿는다.

일본 친구여. 그러면 조선 사람은 여기에 만족하고 기쁘게 순종하여 행복을 노래하는가. 종전의 불평과 울분과 고통은 모두 흩어지고 평화롭고 즐겁게 생명의 창달을 즐기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참 『본성』에 의하여 조선 사람은 손을 내밀어 일본 사람과 악수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조선 사람이 멀리 서서 주저하는 것을 본다. 그대 앞에서 옳다고 하고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본다. 친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나 할 수 없는 것을 본다. 아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 전과 같이 마음속에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본다. 일본 친구여. 그대는 오늘의 평온을 자랑하며 잘 하는 일을 끝냈다고 하는가. 우리는 말한다. 데라우치 시대 무단통치 아래에서도 조선 사람은 10년간을 평온했다고 하였다.

조선 사람의 전과 같은 고통이 무리한가. 그대가 만일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솔직히 말하겠다. 총독부 당국자의 성심은 성심이며 그 성심에 의지하여 개혁을 각 방면으로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철저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모순과 사실상의 충돌이 생겼다. 오늘에 이르러 언론자유가 어디 있으며 집회자유가 어디 있으며 인권보장이 어디 있으며 산업상의 조선인 보호가 어디 있는가.

문화정치 표방 아래 조선 사람은 용감하게 나서 몇 종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대개는 원고를 압수당해 경영상 곤란이 일어났다. 덕의 정치와 은혜의 바람 아래 각종 집회가 생겨났으나 사실상 해산을 당한 것과 다르지 않다. 헌병제도 철폐 아래 조선인은 과연 공기의 자유로운 호흡을 기대하며 인권의 확실한 보장을 희망하였으나 경찰이 횡포를 부린다는 소리는 여전하며 산업에 종사하는 조선인의 위기는 갈수록 심하다. 하루하루 더해 여기저기에서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당국자의 무성의를 저주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전과 같이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고통을 느낀다. 그대는 말할 것이다. 이 모든 구속과 통제는 형세가 부득이한 탓이 아닌가. 조선의 현실을 관찰하라. 우리는 부득이하여 오늘과 같은 정치를 베풀고 있다. 누가 조선인의 고통과 불행을 바라는 사람이겠는가.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 장래의 희망을 당부하라고 할 것이다.

일본 친구여. 우리는 그대와 토론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며 장래를 저주하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직 충정을 밝혀 우리의 고통을 말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그대는 역사를 잘못 알았으며 정치를 잘못 깨달았다. 정치는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백성을 기르고 안심시키는데 있으며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꼬리를 치면서 활동하는 생물이다.

모든 잘못의 근본은 오직 하나의 점에 있으니 곧 『자기의 이상』대로 이를 □려고 하는 탓이다. 이상 없는 정치는 맹목정치이지만 이와 동시에 『자기의 이상』만 고집하는 정치도 맹목정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나친 요구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언론·집회의 자유를 철저하게 허용하며 인권 보장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산업상 특별보호를 더하라는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고 자유를 허용하면 정치에 분란이 생기는가. 만약 그렇다고 하여 이를 억압하면 평화가 찾아오는가. 자유는 참으로 생명의 본질이고 인권은 참으로 생명의 확인이다. 이를 억누르는 것은 영원한 불평과 고통의 원인이 되므로 고통받는 사람과 불평하는 사람이 어떻게 평화와 만족을 얻고 사랑과 융화를 얻겠는가.

우리는 진실로 그대가 정치의 의를 행하여 백성을 기르고 안심시키되 그 결과를 정말 『시일』의 자연적 해결에 구하기를 바란다.

일본 친구여. 그대는 동양평화를 생각하는가. 우리는 더욱 진정한 동양평화의 필요를 느낀다. 이때에 우리의 고통을 그대에게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 어찌 무익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본래 천성이 ‘성(誠)’인 것을 믿고 충정으로 그대에게 알린다. 그대는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