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오후 3시 10분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순천린(인)비료공장 준공식 시찰 영상을 15분간 방송했다. 김 위원장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행사장에 들어서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2020.5.2/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관영 통신 보도로 남한에 대해 적으로 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그 조치로 남북 간 모든 연락과 통신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특히 “배신자들이 저지른 죄값을 정확히 계산하겠다”고 밝혀 향후 북측 조치에 대한 긴장도를 높였다. 북측이 이날 첫 조치로 언급한 ‘모든 통신선 차단’은 소통 자체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이 같은 대남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시작으로 대남 비난 분위기를 끌어올려 왔다. 담화에 대한 각계 반응을 연일 전하고 전국 각지의 시위와 행진 소식을 알리며 대남 압박을 강화해왔다.
북한의 이번 결정은 ‘화해와 협력’으로 표현되던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분위기를 180도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밝힌 셈이다.
이날 발표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북한은 “지켜보면 볼수록 환멸만 자아내는 남조선 당국과 더 이상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일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대화 단절을 넘어 남북관계 자체를 대결 구도로 가져가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앞선 두 번의 담화에서 나타난 표현의 연장선에 있는 언급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은 노동신문을 통해 탈북자들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문제 삼으며 “남조선 당국이 이를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을 내다봐야 할 것”이라는 담화를 내놓았다.
지난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 담화에서도 북한은 “우리는 남쪽으로부터의 온갖 도발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남측과의 일체 접촉 공간들을 완전 격폐하고 없애 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맥락에 따라 북한은 ‘대결’로 규정되는 추가적인 조치를 상당 기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이 백두혈통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직접 총괄하는 대남 사업의 총화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날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도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하고 우선 먼저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라고 밝혀 이번 조치가 수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전날(8일) 오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연락을 받지 않다가 오후에 다시 연락을 받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 이날 전격 ‘완전 차단’을 발표하며 첫 조치로 공언했던 연락사무소 ‘철폐’ 수순을 시사했다.
이후 북한은 순차대로 공언했던 조치들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언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폐기를 남북 간 전체 통신 연락선의 차단으로 확장한 만큼 세부 전략들의 유동적인 변경이 있을 수는 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 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문제는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이날 보도에서 전 통일선전부장이었던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대남 사업에 복귀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대남 사업에 잔뼈가 굵은 김 부위원장의 복귀는 ‘대남 총괄’을 맡게 된 김 제1부부장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남 ‘강경파’인 김 부위원장의 복귀로 인해 향후 대남 압박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