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도쿄 특파원
2001년 삼성전자의 매출액(연결재무제표 기준)은 46조 원, 영업이익은 4조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소니를 앞섰지만 매출액은 절반에 불과했다. 시가총액, 브랜드 가치 등에서도 소니에 못 미쳤다.
그 후 약 20년이 지났다. 1980년대와 90년대 세계 가전시장을 호령하던 소니는 2000년대 들어 침체를 거듭했다. 특히 주력 상품이었던 TV에서 ‘고품질’을 고집하면서 중국과 인도 등 대형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1980년대 도쿄 고텐야마에는 11개의 소니 건물이 들어서면서 ‘소니 마을’을 형성했지만 2000년대 이후 대부분 건물이 매각돼 지금은 본사 표지석만 남았다. 일본 국내외 언론에서 ‘소니 몰락’이라는 단어가 차츰 등장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소니의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郞) 사장은 지난달 19일 작년 실적을 발표하며 “세계 각지에서 외출 자제가 계속되면서 음악과 영상 콘텐츠에 사회적 가치를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부 사업 부문이 수혜를 봤다는 것이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기 위해 인공지능(AI) 탑재 이미지 센서, 원격 및 라이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미래 비전도 밝혔다. 소니는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으로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렸다.
반면 삼성은 7일 ‘삼성이 위기입니다’로 시작하는 호소문을 냈다. 삼성은 “지금의 위기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인데 장기간에 걸친 검찰 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은 위축돼 있다”며 “삼성의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국 기업 보도에 인색한 일본 언론들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과정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불법 경영권 승계, 전 정권에 대한 뇌물 공여 등 혐의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실적이 주춤하자 일본 주간지들은 ‘삼성의 불안’ ‘(소비자의) 삼성 이탈’ 등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소니 측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