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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여름 에티켓이 필요해[현장에서/김태언]

입력 | 2020-06-10 03:00:00


서울 등 중부 지방에 9일 첫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뉴시스

김태언 사회부 기자

9일 오전 9시 반경. 서울 마포구에서 한 시내버스에 올라타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땡볕이 거셌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연신 손부채를 부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런 승객들을 위해 버스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 건 누가 봐도 선의다.

이 당연한 장면이 올해는 다소 무섭게 다가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모든 창문을 닫은 밀폐 공간. 출근길 버스는 승객들 거리가 50cm도 되지 않았다. 출근길이 끝나도 거리 두기는 실패다. 승객들이 햇볕을 피해 앉느라 한쪽 방향 좌석만 만석이었다. 무릎이 맞닿는 간격이었다. 게다가 바람을 조절하려 너도나도 통풍구에 손을 댔다. 무엇 하나 ‘평범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처음으로 맞는 여름이 찾아왔다.

9일 서울에 올해 들어 첫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대낮 거리는 햇볕은 둘째 치고 바람마저 텁텁했다. 그늘로도 해결되지 않는, 실내에서 에어컨을 찾아야 하는 틀림없는 여름이다.

도심 속 단골 피서지인 교보문고 광화문점도 이날 아침부터 바글바글했다. 오전 10시가 살짝 지났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다. 에어컨과 가까운 곳에는 땀을 식히려 마스크를 내린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다닥다닥 붙은 채였다.

아들(6)과 외출한 30대 여성 이모 씨는 “집에서 종일 에어컨을 틀긴 부담스럽다. 어린이집도 휴원을 연장해 같이 나왔는데 사람이 많아 당황스럽다”고 했다. 서점 측 관계자는 “마스크를 벗으면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안내하지만, 더워서 잠깐 내렸다고 항의하면 뭐라 그러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무더위에 문을 꼭 닫은 상태로 틀어대는 에어컨. 더위를 피해 몰리는 사람들로 2m 거리 유지는 어림없는 실내 공간. 답답하고 습해 벗어버린 마스크. 이번 여름에는 이런 풍경을 ‘일상’으로 여겨선 안 된다. 방역당국과 업소들이 나름의 지도와 당부를 이어가겠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여름을 타고 더 확산되지 않도록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신(新)여름에티켓’이 필요하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더위를 피해 실내로 몰리면서 실외 활동으로 환기 등이 자연스레 이뤄졌던 봄철보다 전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여름일수록 거리 두기를 지키는 실내 구조를 만들고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는, 언제나 그랬듯 무척 어려운 상대다. 하지만 찰나의 방심이 불러올 감염의 피해와 비교할 순 없다. 서로를 위한 양보와 인내만이 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힘이 된다. 이 지난한 싸움은 또다시 시작이다.

김태언 사회부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