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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44〉

입력 | 2020-06-10 03:00:00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시들이 있다. 트리니다드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영국 흑인 시인 로저 로빈슨의 시집 ‘낙원’은 그런 시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간호사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시 ‘그레이스’는 특히 뭉클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내 아들은 태어났을 때 1kg에 지나지 않았다./큰 머리에 불룩한 눈, 푸른 정맥이 전부였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었다. 회진 온 의사의 말대로라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의사는 아이가 ‘살 수 있을지조차 모르고/살더라도 병원에서 결코 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죽거나 불구가 된다는 말이었다. 시인과 아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때 자메이카 출신의 수간호사가 그들을 옆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저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요. 너무 노골적이네요.’ 그녀의 말에는 의사의 무자비한 말을 받아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근무 중일 때는 인큐베이터를 방으로 끌고 가 아이를 직접 돌보았다.

간호사는 이 아이에게만 잘한 것이 아니었다. 곧 죽게 될 갓난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간호사들에게 지시했다. 곧 죽을 테니 먹일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러나 수간호사는 정반대로 간호사들에게 아이를 충분히 먹이라고 지시했다. ‘어떤 아이도 배가 주린 채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배불리 먹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어두운 구석에 앉아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불러줬다’. 우울한 노래가 아니라 퍼렐 윌리엄스의 ‘행복’이라는 밝은 노래였다. 그렇듯 마지막 순간까지도 받들어야 하는 게 생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그레이스가 의미하는 것처럼 ‘자비’로웠다.

시인의 아들은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대다수가 이민자들인 간호사들에게는, 차트만 보고 처방을 내리고 병의 경과에만 관심이 있는 의사들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진정한 돌봄의 정신이 있었다. 이게 그 나라만의 일일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