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긴장국면에 김영철이 다시 등장했다. 2007년 7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6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당시 북측 대표 자격으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 동지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여정 동지는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죄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계획들을 심의하고 우선 먼저 북남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 버릴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
이번 사태 속에서 김여정은 ‘대남사업총괄’을 맡고 있다는 것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통전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였죠. 동시에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지고 통전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김영철 부위원장이 남북관계 긴장조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장금철 통전부장의 이름이 어디서도 언급되지 않은 것과 대조됩니다.
한직(閒職)으로 좌천되기 전까지 김영철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에서도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격이었습니다. 역사적인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큰 역할을 했는데 2018년 6월과 2019년 1월에는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조명록 차수(次帥·인민군 원수와 대장 사이의 계급) 이후 18년 만의 일이었죠.
2018년 9월 조선노동당 청사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모습. 김정은 위원장의 오른쪽에 김영철이 배석했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대통령, 정의용 대통령국가안보실장, 김영철,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 사진=공동취재단
평창올림픽 당시에는 폐막행사 참석을 위한 북측 고위급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서울을 찾았습니다.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방식이었는데 보수진영의 엄청난 반발을 불렀던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2018년 9월 평양 옥류관 식사자리에서 우리 재벌총수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망발을 내뱉었던 리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현 외무상)이 동행했습니다.
2018년 6월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을 찾은 김영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사진=백악관
“제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을 때 저는 그 사람 보면 인디언영화에 나오는 기병대 대장, 인디언을 죽이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고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그걸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나요. (중략) 한반도 문제 관련해서 매우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남북관계에 있어 김영철은 혹시 정 수석부의장이 북-미관계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언급한 볼턴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평창올림픽이나 북-미 정상회담 같은 대화 국면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김영철 하면 천안함, 연평도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죠.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회담 파트너로서 김영철의 태도를 문제 삼아 교체를 요청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북한이 대적(對敵) 관계로의 태세전환을 공언하며 추가적인 도발을 예고한 것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 부장급(정치학 박사 수료)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