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GDP를 분식(粉飾)한 진짜 이유는 국가채무, 재정적자를 적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GDP 숫자가 커지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 재정적자 비율은 떨어졌다. 하지만 숫자만 바꿨다고 경제가 진짜 좋아졌을 리 없다. 국가신용등급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2009년 말 추락하기 시작해 무디스 기준 등급이 2년 3개월 만에 A1에서 최하위 C로 16계단 떨어졌다.
▷코로나19 대응에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은 요즘 ‘좋은 채무론’을 내세운다. ‘적자국채를 발행해 돈을 풀어도 GDP가 더 많이 늘어나면 좋은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이는 기초산술에 안 맞는 발상이다. 재정지출을 늘렸을 때 GDP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여주는 ‘재정승수’가 한국은 0.3∼0.5다. 즉 1조 원을 풀 때 GDP는 3000억∼5000억 원 증가에 그친다는 뜻.
▷그렇다고 곧바로 등급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나라들이 재정을 풀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신용평가사들도 칼같이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한 나라의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하는 만큼 산업경쟁력, 증세 여력도 고려한다. 그럼에도 등급 하락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건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듯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복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외환위기 이후 그전 등급을 되찾는 데 13년이 걸렸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이자가 올라 재정에 다시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3차에 걸친 60조 원의 추경으로 나랏빚이 111조 원 늘면서 한국은 올해에만 20조 원 안팎의 국채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신용등급까지 강등돼 이자율까지 높아지면 그야말로 빚이 빚을 부르는 상황이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