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름그린&드라그세트 ‘힘없는 구조, Fig. 101’ 2012년.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를 기념해 조성된 트래펄가 광장에는 넬슨 제독 동상을 중심으로 4개의 좌대가 놓여 있는데, 그 위에는 조지 4세의 기마상을 비롯해 19세기 전쟁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네 번째 좌대는 원래 윌리엄 4세의 기마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자금 확보 문제로 150년 이상 비워 있다가 1999년부터 혁신적인 공공미술의 무대가 됐다. 이 황금빛 청동상은 2012년 선정작이다. 역사적으로 기마 동상은 왕이나 장군의 힘과 권력, 지도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작가는 예술이 권력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비판한다. 높이 4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기마상에는 무기를 든 기수도, 용맹한 말도 없다. 흔들 목마를 타고 노는 어린아이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매일 전투를 벌인다. 좌대 위에 놓인 아이는 전쟁 영웅의 지위에 오르지만, 기념할 만한 역사는 없고, 오직 희망찬 미래만 가지고 있다. 작가는 미래 세대의 희망을 찬양한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른들의 전쟁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일깨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