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동안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는 등 학대를 받아온 A 양(9)은 목에 쇠줄이 묶인 채 생활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4층 발코니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한 끼만 주고 ‘물고문’까지 시키는 등 추가 학대도 확인됐다. 하지만 의붓아버지(35)는 “학대는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친모(27)는 조현병을 이유로 아직 경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내세워 학대를 정당화하려는 건 다른 사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가 2014년 9월 이후 아동학대 치사 21건을 분석해보니 약 42.9%가 질병이나 생활고, 그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다.
● 목에 쇠사슬 걸고 감금, 4층 베란다로 탈출
A 양은 경찰 조사에서 수년 간 두 사람에게 온갖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밥은 하루 한 끼뿐이었고, 청소 등 일을 시킬 때가 아니면 목을 쇠사슬로 묶인 채 다락방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프라이팬이나 글루건 뿐만 아니라 쇠줄과 자물쇠 등 온갖 도구로 학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욕조에 강제로 머리를 담그는 ‘물고문’도 당했다. 경찰은 A 양의 집에서 프라이팬 등 학대에 사용한 증거 물품을 확보했다.
경찰은 10일 다른 자녀 3명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임시로 맡겼다. 경찰 측은 “법원의 임시보호명령 결정을 받아 5살, 4살, 1살인 자녀를 전문기관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자해소동을 벌였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전했다.
● 학대범 절반 가까이 ‘심신미약’ 주장
경남 창녕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학대해 온 계부와 친모가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 News1
지난해 6월 생활고로 다투다 2세 아들을 숨질 때까지 폭행한 부부는 “친모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산후우울증도 앓고 있었다”고 항변했다. 2017년 5월 자신의 조카를 돌보다 학대해 숨지게 한 이도 “평소 우울증을 앓아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결정할 능력이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다. 우울증이나 지적장애라 해도 어린 아이를 학대해선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재판장은 판결에서 “양육과 보호책임을 부담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각한 상해를 가하거나 유기를 해선 안 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이나 행동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판장도 “아무리 힘든 처지에 있어도, 그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잃은 부모는 절대 (해당 사건의) 피고인으로 불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더불어 예방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학대당한 아이가 직접 신고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모든 부모가 혼인신고나 출산신고 때 의무 아동권리교육을 받게 하는 등 인식 개선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대 재발과 대물림을 막기 위한 관리도 절실하다. 21건 가운데 3건은 피고인이 과거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거나 아동학대로 처벌받은 뒤 다시 또 학대를 저지른 경우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학대 재발을 막기 위한 심리 치료와 상담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창녕=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