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어제 미국을 향해 남북관계에 참견하지 말라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고 제 집안 정돈부터 잘하라”고 했다. 나아가 “그것이 코앞의 대통령선거를 무난히 치르는 데도 유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북한의 남북 간 통신 전면 차단에 “실망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나타낸 반응이다. 미국 국무부는 10일 그동안 언급을 자제하던 북한 인권문제를 들어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의 대미 경고에는 오늘로 2년이 되는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불평도 담겼다. 북한은 그간 미국에 ‘환멸과 분노’를 느꼈다며 “북남관계의 진전 기미가 보이면 막지 못해 몸살을 앓고, 악화되는 것 같으면 걱정하는 듯 노죽을 부린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 원색적 대남 비난에 비하면 그 수위는 한결 낮았다. 북한 매체들은 어제도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는데, 지금 보니 선임자들보다 더하다”고 했다.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을 자극해보려 애를 쓰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을 거론한 것도 당장 국내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실망했다” 수준의 반응을 보인 것을 무관심의 반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래서 미국 대선판을 흔들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한반도 상황관리에만 치중하는 미국의 ‘전략적 무시’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지금 북한은 2년 전 싱가포르 회담, 더 거슬러 3년 전 한반도 위기를 다시 계산에 넣고 미국 대권의 향배를 주시하고 있다. 당시엔 한국을 징검다리 삼았지만 이젠 한국의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은 뒤 미국과 직접 상대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북한의 협박에 한국은 탈북민 활동을 막고 나서 사실상 볼모 신세가 됐다. 북-미 중재자를 자처해온 한국이지만, 정작 다가오는 위기 국면에 끼어들 자격마저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