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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쇠줄 묶고 ‘물고문’까지… 9세 소녀, 4층 난간타고 탈출했다

입력 | 2020-06-12 03:00:00

창녕 학대 아동, 경찰에 진술 “집안일 할때만 쇠사슬 풀어줘”
다른 자녀 3명도 강제 분리 조치… 계부-친모 자해소동 벌이기도
가해자들 질병-생활고 핑계… 처벌 강화에도 아동학대 늘어
“예비 부모 인권교육 등 필요”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는 등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온 A 양(9)이 목에 쇠줄이 묶인 채 생활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4층 발코니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한 끼만 주고 ‘물고문’까지 시키는 등의 추가 학대도 확인됐다. 하지만 의붓아버지(35)는 “학대는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친모(27)는 조현병을 이유로 아직 경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내세워 학대를 정당화하려는 건 다른 사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가 2014년 9월 이후 아동학대 치사 사건 21건을 분석해 보니 42.9%가 질병이나 생활고, 그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다.

○ 목에 쇠사슬 걸고 감금, 4층 베란다로 탈출
경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A 양은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지붕과 맞닿은 4층 높이의 발코니 난간을 통해 옆집으로 넘어가 도망쳤다. 아무도 없는 옆집에서 음료수를 마신 뒤 맨발로 거리를 배회하다 극적으로 구조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눈 부위의 멍, 손과 발의 화상을 비롯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현재 병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A 양은 경찰 조사에서 수년간 두 사람에게 온갖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밥은 하루 한 끼뿐이었고 청소 등 일을 시킬 때가 아니면 목이 쇠사슬로 묶인 채 다락방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프라이팬이나 글루건은 물론이고 쇠줄과 자물쇠 등 온갖 도구로 학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욕조에 강제로 머리를 담그는 ‘물고문’도 당했다. 경찰은 A 양의 집에서 프라이팬 등 학대에 사용한 증거 물품을 확보했다.

하지만 의붓아버지는 “A 양이 반항할 때 몇 대 때렸을 뿐”이라며 학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머니는 조현병을 호소하며 조사도 받지 않았다.

경찰은 10일 다른 자녀 3명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임시로 맡겼다. 경찰 측은 “법원의 임시보호명령 결정을 받아 5세와 4세, 1세인 자녀를 전문기관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자해 소동을 벌였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전했다.

○ 학대범 절반 가까이 ‘심신미약’ 주장

동아일보가 2014년 9월 이후 아동학대 치사 사건 21건을 분석해 보니 절반에 가까운 9건(42.9%)의 피의자들이 질병과 생활고, 심신미약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21건은 모두 당시 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된 뒤 이 법이 적용된 사건들이다.

지난해 6월 생활고로 다투다 2세 아들을 숨질 때까지 폭행한 부부는 “친모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산후우울증도 앓고 있었다”고 항변했다. 2017년 5월 자신의 조카를 돌보다 학대해 숨지게 한 이도 “평소 우울증을 앓아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할 능력이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우울증이나 지적장애라 해도 어린이를 학대해선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재판장은 판결에서 “양육과 보호 책임을 부담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각한 상해를 가하거나 유기를 해선 안 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이나 행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판장도 “아무리 힘든 처지에 있어도, 그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잃은 부모는 절대 (해당 사건의) 피고인으로 불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판결은 강화됐지만 통계로 드러나는 아동학대 건수는 계속 늘고 있다. 아동학대 특례법은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한 계모가 8세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죽은 아이의 언니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다 들통 난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건은 오히려 2014년 1만27건에서 2018년 2만4604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과거엔 사회 인식 부족으로 학대 아동 파악이 부실했다는 걸 감안해도 가파른 증가세다. 학대로 인한 사망 아동 역시 2014년 14명에서 2018년 28명으로 증가했다. 2017년엔 38명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더불어 예방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학대당한 아이가 직접 신고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모든 부모가 혼인신고나 출산신고 때 의무 아동권리교육을 받게 하는 등 인식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대 재발과 대물림을 막기 위한 관리도 절실하다. 21건 가운데 3건은 피고인이 과거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거나 아동학대로 처벌받은 뒤 또다시 학대를 저지른 경우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학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심리치료와 상담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채은 chan2@donga.com·신지환 / 창녕=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