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달라져야 산다]<5·끝> 깜깜이-묻지마 투자 그만
경기 고양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1)는 올해 레버리지(±2배)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에 투자했다가 직장생활을 하며 차곡차곡 모은 결혼자금 3000만 원을 날려 버렸다. 연초 60달러대이던 국제유가가 30달러 아래로 내려가자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가는 속절없이 추락해 ‘마이너스(―)’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다시 30달러대로 올랐지만 수중에 남은 돈은 10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아다 줄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벌인 섣부른 이 씨의 투자는 산산조각 났다.
○ ‘소비자 경보’ 아랑곳 않는 ‘묻지 마 투자’ 성행
하지만 이 중 일부 자금은 투자가 아닌 ‘투기’로 옮겨가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모 씨(30)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통해 5000만 원을 빌려 코로나19 테마주에 투자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생산한다는 회사였는데, 재무제표나 기업 실적 등은 따져보지 않았다. 최 씨의 투자 멘토는 카카오톡, 유튜브 등을 통해 유행하는 ‘주식 리딩방’이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다’ ‘이번에 놓치면 안 된다’는 말에 혹해 전 재산을 쏟아부었지만 잠시 수익을 내던 최 씨의 주식은 최근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하지만 ‘묻지 마 투자’에는 금융당국의 경고도 먹히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폭락을 거듭하던 올해 4월 9일 금융감독원은 일부 원유 ETN에 대해 소비자경보 최고 등급인 ‘위험’ 등급을 발령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다음 날인 4월 10일부터 24일까지 개인투자자는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ETN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총 1조3649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신용융자 잔액은 9일 기준 11조5108억 원으로 코로나19 충격으로 증시가 급락한 3월 말(6조5782억 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자칫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돈을 빌려준 증권사들이 주식을 강제로 팔아치우는 ‘반대매매’ 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투자 결과에 책임지는 문화 필요
금융권에선 금융회사들의 소비자 보호 노력과 함께 투자자 스스로도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꼼꼼하게 안내하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너무 번거롭다’고 항의하는 소비자들도 많다”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누가 등 떠밀어 투자에 나선 게 아니라면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김자현 zion37@donga.com·장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