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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정권은 프레임 전술로 善惡 뒤집는데 野는 정체성 분란

입력 | 2020-06-12 03:00:00

“위안부 운동 부정 안돼” 文 발언, ‘尹사태’ 본질 흐린 프레임 바꾸기
與 오만과 일방주의 극에 달하는데 野 내부 김종인 실험 발목잡기 이어져
보수가치 논쟁은 정권 탈환 후도 안 늦어… 지금은 중도층 잡을 환골탈태 집중해야




이기홍 논설실장

산천어 축제를 둘러싼 동물학대 논란에 대해 검찰이 각하 결정을 내렸다.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안타까웠던 것은 동물보호단체들을 겨냥한 일각의 공격 논리였다.

“모든 어부를 고발해라” “너네나 풀 뜯어먹고 살아라” “모기 살충제 업체도 다 고발해라” 등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산천어 논란은 ‘접경지역 지자체가 어렵게 창출한 소중한 수익사업, 자연 속에서의 놀이와 미식’등 주최 측 및 이용자의 효용 대(對) ‘아무리 식용 동물이라 해도 재미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체에 과도한 고통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가 충돌한 것이다. 산천어들을 일부러 굶긴다는 의혹, 물고기 던지기·옷 속 넣기 등등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산천어를 먹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었는데 그들을 타인의 육식까지 반대하는 비정상적 집단으로 몰아가는, 엉뚱한 핀트의 비난이 횡행했다.

그 뉴스와 비슷한 시각에 문재인 대통령의 윤미향 사건 첫 발언을 접했는데, 핀트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비슷했다.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발언을 접한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발언이 누구를 상대로 한 것인지 의아해했다.

지난달 7일 이용수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 이후 한 달여간 모든 국민이 지켜봤지만 윤미향의 의혹을 추적하는 주류 언론이나 야당에서 위안부 운동을 부정하는 발언은 없었다.

단지 일부 극우성향 인사들과 일본 우파 매체에서 몇몇 부정 발언과 보도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소수에 불과한 그들을 맞상대로 정치를 하는 건가.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어젠다를 만들고 바꿀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프레임 바꾸기 전략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핀트를 벗어난 산천어 댓글들은 상대측의 입장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프레임 바꾸기는 의도적이다.

대통령이 원론적 얘기를 한 것이라고 엄호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평상시 그런 얘기를 했으면 원론이겠지만 회계부정·횡령 의혹 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생뚱맞게 원론적인 얘기를 꺼낸다면 의도적으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한창 커질 때도 많은 이들이 대통령이 진영의 수장(首長)이 아닌 국가 지도자의 입장에서 공정과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핀트를 맞췄고 조국 비리는 난데없이 검찰개혁 프레임으로 바뀌어 버렸다.

막강한 선전선동 능력을 지닌 권력이 프레임을 바꾸면 흑백이 뒤섞여 불분명해지고, 선과 악이 뒤바뀌고, 정의와 불의는 뒤집혀 보이게 된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정권하에서나 조국 같은 이가, 윤미향 같은 이가, 유재수 같은 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독재시대의 차이는 뭔가. 누군가 권력을 등에 업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거나 특권을 누린 행각이 드러났을 때 권력이 비호하고 감싸주느냐, 법과 상식 도덕에 따라 단죄하고 사필귀정을 이루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33년 전 이맘때인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온 국민이 직선제를 외친 것은 직선제라는 제도 자체가 절대 진리여서가 아니라, 불의한 권력을 엄단하고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성인이라면 지금 53세 이상일 것이다. 과연 그들 가운데 지금 조국, 윤미향 사태와 집권세력의 일방주의 행태를 보며 바로 이게 우리가 염원했던 민주정부의 모습이라고 박수쳐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가치전도, 뒤바뀐 정의가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염원했던 걸까.

박근혜 정권이 도덕성은 물론 실력도 밑바닥인 낡은 우파의 실체를 드러냈다면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실력은 물론 도덕성도 밑바닥인 강남좌파의 실체가 드러났다.

특히 21대 국회 여권 초선들의 행태는 오만이라 표현하기조차 민망한 가벼움 그 자체다. 실제론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에는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인권과 민주화의 기수를 자처하며 일제 점령군을 물리친 무장투쟁 전사들처럼 행세하고, 여당은 자유당 공화당 시절을 연상케 하는 힘의 정치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 같은 독주본능이 주춤할, 즉 거여(巨與)가 두려워할 유일한 시나리오는 민심 이반에 따른 재집권 실패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여당이 그런 걱정을 하려면 야당이 잠재적 위협이 될 만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어떤가.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제 등등 새로운 실험을 하려 하니 벌써 당내에서 보수니 아니니 하는 소모적 발목잡기가 시작됐다. 지금 통합당의 절대 과제는 정권 재탈환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중도층을 잡아 대선에서 이긴 뒤에 보수의 가치를 놓고 더 뜨겁게 토론하고 좌든 우든 다시 클릭 조정을 해도 된다. 중도를 잡기 위한 대변신, 환골탈태에만 집중해도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때에, 침몰하는 배 안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린 내부 총질이나 하고 있으니 집권세력이 마음대로 프레임 전술을 구사하고 힘자랑을 하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