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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님에게[이준식의 한시 한 수]〈62〉

입력 | 2020-06-12 03:00:00


2월에 새 명주실을 팔고 5월에 햇곡식을 팔아버리니 눈앞의 종기는 치료될지언정 마음속 살점을 도려낸 꼴./바라노니 군주의 마음, 광명의 촛불이 되어/비단옷 화려한 연회장일랑 비추지 말고 도망 다니는 백성들 빈집이나 비춰주시길. (二月賣新絲, 五月조新穀. 醫得眼前瘡, 완각心頭肉. 我願君王心, 化作光明燭. 不照綺羅筵, 只照逃亡屋.) ―‘농가를 읊다(영전가·詠田家)’ 섭이중((섭,접)夷中·837∼884 추정)


2월이면 봄 누에치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고 5월은 겨우 모내기철이다. 한데 구경도 못 한 새 명주실과 햇곡식을 내다 판다? 겨우내 겪은 굶주림은 명주실로, 춘궁기의 궁핍은 가을걷이로 갈음하리라 작정하고 마련한 궁여지책이었다. 시인은 이를 종기 고치자고 제 속살을 파서 메우는 꼴이라 비유했다. 쪼들리는 생활에 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입도선매’하거나 빚과 세금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했을 것이다. 나라님이 편당(偏黨) 없이 백성을 보듬어 줬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 소망이라기보다 나라님과 저 화려한 연회장을 채운 이들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성토라 하겠다.

농촌사회를 대변하는 온기 그득한 시와 귀족의 무능을 질타하는 풍자시를 적지 않게 남긴 섭이중. 물정 모르는 귀족 자제에 대해 “뜰 가득 꽃나무 심어놓으니 화려한 집안 곳곳에 꽃들이 만발. 꽃나무 아래 벼 이삭이 자라났건만, 저들은 그걸 잡초라고 뽑아버리네”라 비꼬았고, 관리의 가렴주구를 겨냥해서는 “아버진 산 위에서 밭을 일구고 아들은 산 아래서 황무지 개간. 6월이라 이삭이 패지도 않았는데 관청에선 벌써 창고를 짓고 있다”라 했다. ‘완육의창(완肉醫瘡·살을 도려 종기를 치료한다)’이라는 성어가 이 시에서 유래했다. 뒷일을 고려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대충 처리한다는 뜻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