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ABTB “사회적 분열과 정체성 사이 방황하는 예술가 그렸어요”

입력 | 2020-06-12 03:00:00

단편소설-만화-음악 아우른 2집 ‘daydream’낸 5인조 하드록 밴드 ABTB
드러머 강대희가 쓴 소설 66쪽에 앨범 디자이너 ‘Ongsu’의 만화 삽입
카프카 ‘변신’-최인훈 ‘광장’서 영감, “코로나 끝나면 2집 전곡 연주할 것”




‘꿈인 것도 같고 꿈이 아닌 것도 같은 상태에서 자기 안의 깊숙한 어딘가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단편소설 ‘daydream’ 중)

국내 대표 하드록 밴드 ABTB(Attraction Between Two Bodies)가 하나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단편소설, 만화, 음악을 아우른 ‘콘셉트 앨범’을 냈다. 2집 ‘daydream’(사진)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2016년 1집 ‘Attraction Between Two Bodies’ 이후 4년간 스토리와 음악을 벼린 역작이다.

록 밴드 ABTB. 왼쪽부터 강대희(드럼) 황린(기타) 박근홍(보컬) 장혁조(베이스기타) 곽상규(기타). ABTB 제공

10일 만난 멤버들은 “사회적 분열과 정체성 혼란의 가운데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방황을 그렸다”고 했다.

음악 CD에는 66쪽 분량의 속지가 딸려 있다. 드러머 강대희가 쓴 단편소설 ‘daydream’, 앨범 디자이너 ‘Ongsu(3fingers)’가 그린 만화를 담았다. 주인공인 음악가 세준이 273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광장의 집회 행렬을 지나다 백일몽에 빠져드는 하루를 다뤘다.

멤버들은 “카프카의 ‘변신’과 최인훈의 ‘광장’ 같은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앨범의 시놉시스를 만든 보컬 박근홍은 “화가는 환쟁이라고 불리지 않지만 대중음악가는 여전히 딴따라라 불리는 게 현실”이라면서 “자신이 진짜 벌레라는 사실을 음악가 본인만 모르는 상황을 상상하며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렸다”고 했다. 세준은 끝내 흐물흐물해진 몸통을 짓밟힌 채 하수구로 떨어진다.

‘보라색이라고 느껴지는 점액을 흘리며 서서히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소설 중)

보라색은 빨강도 파랑도 택하지 못한 세준의 처지를 은유한다.

“전작보다 더 다채로운 사운드를 내고 싶다는 고민을 했어요. 스토리가 나오니 자연스레 해결됐습니다.”(박근홍)

멤버들은 연주로 10단 기어를 변속하며 스토리의 아우토반을 질주한다. 멜로디의 장검을 휘두르듯 한 음, 한 음 허스키하게 쏘아붙이는 박근홍의 보컬은 고막 넘어 폐부로 파고든다. ‘a-void’에는 군중이 빠져나간 광장의 공허를 표현하려 영국 밴드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풍의 기타 사운드를 넣었다. 극도의 혼란을 그린 ‘neurosis’엔 일렉트로닉 뮤직, 흑막 뒤 권력자가 화자인 ‘my people’에는 “왠지 부유해 보이는” 솔(soul)의 사운드를 활용했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제대로 공연을 열게 되면 2집 전곡을 순서대로 연주할 작정이다.

“핑크 플로이드, 러시, 드림 시어터 같은 대가 형님들의 발꿈치라도 쫓아가 보자는 심정이었죠. 정말 멋있는 앨범 한 장 만들고 싶었습니다.”(강대희)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