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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하염없이 1km’ 학대소녀는 이렇게 탈출했다…지도로 경로 보니

입력 | 2020-06-12 13:53:00


(네이버지도)

경남 창녕에서 쇠사슬에 묶여 학대당한 아홉살 소녀는 약 15m 높이의 경사진 빌라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가 탈출했다.

위성 지도를 통해 학대 받던 A 양(9)이 탈출한 빌라 위치를 확인해 보니, 건물은 인적이 드문 도시 끝자락의 산 밑에 있었다.  

이 빌라는 외각 마을에서도 논밭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할 만큼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있다.

빌라는 총 4층이지만 경사진 지대를 높여 건물을 지은 점, 꼭대기가 복층인 점을 감안하면 A 양이 탈출한 곳은 도로면에서 5층 높이 이상이다.

15m 높이, 45도 경사진 지붕 지나 위험천만 탈출

(구글맵)

(채널A)

A 양의 집은 건물 꼭대기(4층)에 있다. 복층 베란다에서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다.

지붕 경사는 약 45도, 옆집 베란다까지는 약 9m다. 건물 높이는 15m 안팎으로 성인이 이동하기에도 무서운 구조다.

A 양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맨발로 이곳을 지나 탈출했다. 부모가 집안일을 시키기위해 잠시 사슬을 풀어준 틈을 타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옆집서 짜파게티·누룽지로 굶주린 배 허겁지겁

(구글맵)

옆집 베란다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간 A 양은 우선 부엌에서 짜파게티와 누룽지, 콜라로 굶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웠다.

옆집 주민은 “베란다 문을 열어놓는데, 아무도 없었는데 먹고 간 흔적이 있더라”고 언론에 설명했다. 이 흔적을 발견한 때가 5월 29일 오전 10시경이다.

아랫마을 까지 1km 무작정 걸어

(구글맵)

급히 배를 채운 A 양은 빌라를 빠져 나와 아랫마을까지 시골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 내려갔다.

빌라와 마을 사이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A 양의 다음 행적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마을 입구 편의점까지 약 1㎞를 걸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과정에서 차도를 이용했는지 산길을 이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목격자인 편의점 주인은 “엄마, 아빠한테 들킬까 봐 뒤쪽에 산이 있는데 그쪽으로 탈출해서 나왔다고 한다. 흙먼지 투성이었다”고 말했다.

쫓기듯 덜덜, 먹고 싶은 것 고르라는 말에…

이후 A 양의 행적은 같은 날 오후 6시 20분경 드러났다.

절뚝거리며 맨발로 다니는 A 양을 한 주민이 발견해 인근 편의점에 데리고 들어간 것. 슬리퍼도 신겨줬다. 편의점 CCTV에서 A 양이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편의점에서도 A 양은 누군가에 쫓기듯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편의점 주인은 “얼굴은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덜덜 떨면서 여기저기 눈치 보는 상태였고 걷는 것이 좀 불편다”고 말해다.

배가 고프다던 A 양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먹을것을 골랐다. A 양은 구조 주민이 사준 도시락, 바나나 우유, 빵, 과자 등을 먹었다고 한다.

A 양은 최초 구조 주민에게 “집에 가기 싫다”며 “큰아빠·큰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양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인계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계부와 친모가 달궈진 프라이팬과 쇠젓가락으로 손발을 지지고, 물이 가득한 욕조에 머리를 넣어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등의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계부는 “반항할 때 몇 대 때렸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모는 조현병을 호소해 조사도 받지 않았다.

A 양은 12일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지내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오늘 퇴원한 후 첫 끼를 먹었는데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주는 밥을 다 싹싹 비울 정도로 잘 먹는다”고 전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