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는 지난해 4월 15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우승 상금으로 207만 달러(약 24억8000만 원)를 받았다. 우승 상금을 포함한 이 대회 총상금은 1150만 달러(약137억7000만 원)였다.
그해 7월 29일 카일 기어스도프(18·미국)는 ‘포트나이트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포트나이트는 2017년 첫 선을 보인 ‘비디오 슈팅 게임’이다. 기어스도프는 이 대회 우승으로 300만 달러(약 35억9000만 원)를 받았다. 우즈보다 1.5배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이 대회 총 상금도 3000만 달러(약 359억 원)로 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마스터스만 포트나이트 월드컵에 밀린 게 아니다. 테니스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남녀 단식 우승 상금도 235만 파운드(약 35억7000만 원)로 기어스도프가 받아간 돈보다 적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총상금이 3000만 달러로 포트나이트 월드컵과 같았다.
게이머 인기도 기존 스포츠 스타에 뒤지지 않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구글은 자사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인기도를 측정해 알려주는 ‘구글 트렌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 ‘페이커’ 이상혁(24)이 ‘피겨 여왕’ 김연아(30)보다 더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 한국 축구 간판 손흥민(28·토트넘)조차 2018년이 되어서야 페이커의 인기를 앞섰을 정도다.
적어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그렇게 판단했다. OCA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여름 아시아경기를 치르면서 e스포츠를 시범 종목을 채택했다. △스타크래프트 II △클래시 로얄 △펜타스톰 △하스스톤 △LOL △PES(위닝일레븐) 2018 등 6개 게임이 열렸다. 대회 조직위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스포츠 형태가 급속히 발전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e스포츠를 ‘새로운 스포츠 형태’라고 해석한 것이다. 아시아경기는 올림픽 다음으로 많은 선수가 참가하는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다.
그러나 최종 관문이라 할 수 있는 IOC 승인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67·독일)이 기회 있을 때마다 “e스포츠는 폭력적이라 올림픽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펜싱 종목에 출전했던 바흐 위원장이 폭력성을 이유로 e스포츠를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바흐 위원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물론 IOC 안에서도 바흐 위원장과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올림픽은 갈수록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를 만회하고자 2020 도쿄 올림픽은 3대3 길거리 농구, 스케이트보드, 자전거 장애물 경주(BMX) 등 젊은 세대에 인기 있는 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2024 파리 대회 때는 브레이크 댄싱도 정식 종목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를 IOC에서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e스포츠 산업 전문가 사이에서는 아예 ‘e스포츠 올림픽’을 따로 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PWC에서 400명이 넘는 전문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가장 많은 29%가 ‘e스포츠는 올림픽과 독립적인 형태로 발전하면 된다’고 답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서 IOC와 제휴해 올림픽이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여는 것처럼 e스포츠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단체를 세워 별도로 올림픽을 치르면 된다는 주장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