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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유통공룡 흔든 비결은 하루 혁신, 또 하루 혁신…

입력 | 2020-06-13 03:00:00

◇마켓컬리 인사이트/김난도 지음/300쪽·1만8000원·다산북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사진)는 이듬해의 주요 소비 트렌드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를 12년째 펴내면서 한 스타트업에 주목했다. 신세계 롯데 등이 장악한 레드오션인 유통업에서 어렵다는 신선식품을 새벽 배송하는 마켓컬리였다. 창업한 2015년부터 해마다 트렌드 코리아에 언급된 터였다.

지난해 말 출판사가 이 회사 김슬아 대표와의 대담집을 제안했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담집으로는 성에 안 찬 김 교수는 창업 첫해 회원 5만 명, 매출 29억 원에서 지난해 회원 389만 명, 매출 4289억 원의 성장신화를 분석한 이 책을 썼다.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성공의 화두로 고객을 꼽았다.

“아이나 남편에게 비싸지만 좋은 식품을 먹이고 싶은 워킹맘이 언제 택배를 받는 게 제일 확실하고 편할까. 받아서 냉장고에 넣고 출근할 수 있는 오전 7시다. 이 시간까지 배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역순으로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맞춰 나갔다. 다른 유통업체가 빠른 배송에 골몰할 때 마켓컬리는 고객 입장에서 생각했다.”

김 교수는 책을 쓰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김 대표가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VOC(고객의 소리) 읽는 일이라고 한 것과 직원 승진의 기준인 KPI(Key Performance Index)가 실적이 아니라 ‘(부정적) VOC를 얼마나 줄이느냐’인 것. 모든 것을 고객에게 맞춘다는 말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고객 불만은 당장 해결해 시스템 전환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 대표는 ‘불만을 말해주는 고객이 고맙다’고 했다. 뭘 바꿔야 하는지 알려주는 고객이야말로 중요하다.”

김 교수는 지난달 27일 김 대표, 출판사 사람들과 출간 기념 저녁을 하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두어 시간 앞두고 물류센터 직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 몇 시간 뒤인 이날 밤 마켓컬리 홈페이지에는 김 대표 명의의 사과와 함께 해당 물류센터 물품 전량 폐기, 향후 방역 계획 등을 소상히 밝힌 공지가 떴다. 선제적이고 빠른 사과였다.

이 같은 고객 지향의 배경에는 김 대표의 열정이 있다. 회사를 만들고 5년간 하루 쉬었다. 이 회사에 초기 투자한 한 벤처캐피털리스트 대표는 ‘창업자는 차가운 머리(기발한 아이디어)가 있거나 뜨거운 실행력이 있는데 김 대표는 둘 다 가졌다’고 했다. “빛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뜨거운 열정의 모범적 사례”다.

김 교수는 마켓컬리의 성공이 고객 반응을 읽어가며 하루하루 조금씩 고치고 성장한 결과라며 이를 ‘하루치의 혁신’이라고 표현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만 더 잘하고, 그것을 오래할 수 있다면 어느 날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다. 트렌디하다는 것은 상황의 변화를 이해하고 어제의 성공 체험을 부인할 줄 아는 것이다. 5년밖에 안 된 마켓컬리가 그렇게 축적한 힘은 인상적이다.” 하루치의 혁신이 꼭 기업인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닐 것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