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찾아간 산티아고 순례길
종일 걷고 생각하고 문득 깨달아
다시 복귀해 일할 수 있었던 동력
삶의 변곡점 ‘걷는 시간’ 필요하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언제나 그렇듯 질문이 위력을 발휘했다. 질문을 가슴에 들이고 시간이 흐르자 다른 게 보였다. 현실의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실은 시간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시간이 자꾸 줄고 있다는. 돈은 없다가도 생길 수 있으나 시간은 그저 줄어들 뿐 늘어나는 법이 없다는. 앞으로의 삶이란 더 이상의 추가 수입 없이 통장 잔고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 있는 돈만 갖고 살면 어떻게 될까? 한 푼이라도 아끼고 소중한 데 쓰지 않을까? 그러니 마저 묻게 되었다. 시간을 그렇게 소중하게 쓰고 있냐고. 지금처럼 지내는 게 괜찮으냐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냐고.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으므로 답은 쉬이 찾아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사직 같은 휴직을 했다. 상무 6년 차에게 1년씩이나 휴직을 허용해준 회사도 고마웠지만 그런 연차에 휴직을 감행한 나도 꽤 용감했다. 더구나 퇴직을 염두에 둔 휴직이었다.
산티아고에서 한 일이란 아주 심플했다. 걷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국경 사이의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남서쪽으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살지 길을 잃어버려 떠난 터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A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조금 후 전혀 다른 생각 B가 올라오고 좀 더 후엔 C가, D가 차례로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 덩어리들이 경쟁하듯 생겼다 사라졌다. 그렇게 30여 일 헝클어진 생각 속에 걷던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올라왔다. 돌아가서 그동안 받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온몸에 가득 찼다.
‘속세’를 사는 우리는 어느 것이 유리한지 알고자 고민하며 그걸로 의사 결정을 한다. 물론 나도 유불리를 계산하고 따지며 자주 그렇게 선택한다. 그러나 적어도 마흔 넘어 인생의 행로가 걸린 결정은 유불리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은 길을 잃고 갈팡질팡한다. 그럴 때 멘토만 찾지 말고 기업을 눈여겨보시라 권하고 싶다. 기업들은 중요한 과제를 다룰 때 예산과 시간과 사람을 투입한다. 개인은 무얼 투자하나? 시간이다. 중요한 일은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제안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길이 보이지 않거든 시간을 내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홀로 걸어 보시라. 그러면 다음 몇 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산티아고에서 배운 또 한 가지가 있다.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산책을 즐겼는지 아는가? 걷는다는 것은 그저 육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도 온몸으로! 그러니 홀로 오래도록 걸어보시라. 그 끝에 길이 보일 것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