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사이더
이정향 영화감독
1995년 미국 켄터키주의 제프리 위건드는 미국 최대 담배회사 부사장이었다. 니코틴의 빠른 체내 흡수를 위해 유해한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또한 이 사실을 발설하면 불이익을 당하게끔 협박받는 처지에 놓인다. 미국 CBS방송국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60 미니츠(60분)’의 프로듀서 로웰 버그먼은 니코틴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은폐한 담배회사들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위건드를 설득한다. 회사의 보복이 두려운 위건드는 국민의 건강과 자신의 삶을 저울질하다 힘겹게 인터뷰에 응하지만 이번엔 방송국이 몸을 사리고 인터뷰를 삭제한다. 이제는 버그먼의 힘든 싸움이 펼쳐진다. 영화는 두 명의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를 보여주지만 그들은 영웅심리와는 거리가 먼 채 그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가 방송을 타고, 담배회사들은 전국적으로 소송을 당해 300조 원이 넘는 벌금을 물게 된다.
흡연자들은 그때까지 담배가 해롭다는 걸 몰랐을까? 그 방송을 보고서야 니코틴의 중독성을 알았을까? 아닐 거다. 어차피 계속 피울 테니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외면했을 거다. 위건드 이전에도 내부고발자가 있었겠지만, 막강한 돈과 권력을 지닌 담배회사와 맞설 언론을 못 만났기에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처럼 외롭게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서서히 변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만큼 성숙해졌기에 내부고발자의 희생이 사회의 거름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도 내부고발자들이 있어 왔지만 미운털이 박혀 신상까지 털리며 인신공격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진실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우리는 낯선 진실일수록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폭로된 비리가 사실이어도 우리 편이라면 부정 따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일수록 그 어떤 비리도 조용히 덮일 것이다. 부정을 행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속을 거라고 자신해서가 아니다. 알아도 모른 척, 오히려 은폐에 앞장서 줄 것이라고 믿기에 저지를 수 있다. 내 자식이 부정을 해서 1등을 했다면 그 사실을 학교에 알리고 바로잡을 것인가? 아님, 덮어줄 것인가? 부정을 저지른 이들이 내편이어도 당신은 분연히 내부고발자가 되겠는가? 그런 당신이라면 정의로운 세상을 원할 자격이 있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