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크 차관, 反中 EPN 동참 촉구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11일(현지 시간) 한국이 반중(反中) 경제블록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나 화웨이 제재 등에 동참해 중국의 보복 조치에 직면할 경우 “미국은 한국을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전 세계가 중국의 위협과 보복에 맞서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며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에 미국의 강경한 대중정책 동참과 연대를 요구했다.
크라크 차관은 이날 인도, 브라질 등 5개 국가 주요 언론사들과 진행한 전화 간담회에서 미국의 대중 경제제재 및 정책 구상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밝혔다. 한국 언론사 중에서는 동아일보가 유일하게 간담회에 참여했다.
그는 미국이 우방들에 ‘미국의 대중정책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중국이나 미국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게 아니다”며 “선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결국 어느 쪽을 신뢰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의 우방국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투명성, 지식재산권 보호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라는 점을 거듭 설명했다.
그는 이날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간담회에서 △나스닥의 중국 상장기업 규제 △미국 공적연금의 중국 투자 중단 △5G 분야에서 화웨이 제재 △EPN 구축 등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대중 경제정책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크라크 차관은 미 국무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외교 및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당국자로 꼽힌다. ‘EPN은 크라크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을 만나 그 구상을 설명하고, 최근 한국 측에 이를 공식 제의한 이도 크라크 차관이었다.
반중(反中) 경제블록 구상인 EPN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그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크라크 차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중국이 공격적인 행보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홍콩 통제 강화, 인도와의 국경 분쟁, 남중국해에서의 영향력 확대 등을 거론했다. 이에 맞설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왜 이 수많은 국가들과 EPN을 형성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EPN의 성격에 대해서는 “중국의 공격적인 전술에 맞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들이 연대하는 것”이라며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 위기 초기 국면에서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 전략물품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을 상기시키며 “예를 들면 의료 장비와 식량, 안보 관련 물품들의 공급망 확보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크라크 차관은 “한국은 전 세계의 경제적, 기술적 파워하우스이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무역 파트너”라며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해선 “세계 3대 5세대(5G) 관련 기업 중 하나이며 가장 발달한 반도체 생산업체다. 미국에도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훌륭한 기업”이라며 “이런 관계를 미국은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인 만큼 5G에 강한 삼성과의 관계는 돈독히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