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흑인 폭동 시 ‘백인 공격’은 처음, ‘백인이 책임지라’는 메시지

입력 | 2020-06-13 11:19:00

흑인 폭동 역사에 비춰본 새로운 현상 분석




6월 2일(현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가 경찰관에게 살해된 조지 플로이드의 대형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불행하게도 내 예상이 맞았다. 28년 전 그날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1992년 4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는 무법천지로 변하며 화염에 휩싸였다. 2280개 한인 상점이 약탈 또는 방화됐고, 일부 상점은 까맣게 전소됐다. 미주 한인들은 그날을 잊지 못하고 ‘4·29’라 부른다.



흑인 청소년 중퇴율 50% 넘기도


1992년 LA 흑인 폭동 발생 27년 전인 1965년, LA 흑인 지역 와츠(Watts)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1968년 마틴 루서 킹이 암살된 뒤에는 미 전역으로 흑인 폭동이 확산됐다. 그리고 이번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흑인 폭동의 역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다. 

인종 문제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위스 경제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은 저서 ‘아메리칸 딜레마’에서 “미국의 근본 문제는 인종 문제”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인종차별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를 미국의 근본 문제라고 본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가 된 것은 흑인노예제도,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이민자의 값싼 노동력과 영세 소매업, 그리고 백인 특권이 결합한 결과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흑인은 지난 200여 년 동안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종적 측면에서 거의 나아진 게 없다. 어떤 면에서는 상황이 악화됐다. 젊은 흑인 남성들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죽어가고 있으니. 

왜 흑인의 삶은 향상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폭동이 발생하는가. 미국 대도시에는 대부분 흑인 거주지로 불리는 ‘게토(ghetto)’가 있다. 게토에는 빈곤, 범죄, 마약, 갱단이 활개 친다. 20대 흑인 남성 중 대학에 다니는 수보다 감옥에 갇힌 수가 더 많다는 것은 미국인에게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흑인을 이판사판으로 몰고 간다. 자기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는 환경에서 다른 인종의 생명을 고귀하게 여길 순 없다.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분노

5월 3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부 시위대가 상점에 무단 침입해 물건을 훔치고 있다.(위) 5월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소재 버버리 매장 유리창이 깨져 있다. [뉴시스]


흑인 주도의 인종 폭동은 20세기에 수십, 수백 번 터졌고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흑백 간 빈부 격차다. 지난 28년간 그 격차는 더 커졌다. 둘째, 흑인 게토에는 대기업, 대형마켓, 대형공장이 없다. 흑인은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높은 실업률로 가난은 대물림된다. 흑인 청소년의 중고교 중퇴율이 50%를 넘는 대도시도 적잖다. 셋째, 경찰의 과잉진압이다. 이 문제는 19세기부터 죽 있어왔다. 1991년 로드니 킹 사건 때 처음 비디오로 녹화된 후 경찰 과잉진압 장면이 휴대전화로 촬영되면서 공론화되고 있는 것뿐이다. 백인 경찰은 흑인을 범죄자 취급하며 ‘정당방위’라는 명분으로 총을 쏜다. 지금까지 수많은 흑인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사망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백인 경찰은 아주 극소수다. 

1992년 LA 흑인 폭동 때 한인 피해가 컸던 배경에는 두 인종 간 경제적 갈등이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한인이 흑인 상권을 거의 장악하면서 흑인 시위대의 표적이 됐다.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간 갈등,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흑인들이 한인 상점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1991년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쏴 사망에 이르게 한 소위 ‘두순자 사건’으로 한-흑 갈등은 더 악화됐고, 1992년 LA 폭동에 이르러 흑인 시위대가 한인 상점을 표적 삼아 약탈과 방화를 자행한 것이다. 

LA 한인사회는 그때를 교훈 삼아 정치력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흑인을 비롯한 다문화 커뮤니티에 융화되려고 애쓰기도 했다. 현재까지 LA에서 두 명의 한인 시의원이 나왔고,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주(州)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즉시 투입돼 비교적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LA 이외 지역은 상황이 다르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폭동과 약탈, 방화로 이어지면서 여러 도시에서 한인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필라델피아 한인 점포 50여 개가 약탈됐고, 시카고 한인뷰티협회 소속 600여 업체 중 60~70%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볼티모어에서도, 일리노이주 최대 도시 시카고에서도 한인 상점은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LA는 28년 전 4·29 때와 달리 피해가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이번 사태가 다인종·다민족 연합 시위이기 때문이다. TV에 비친 시위대에는 흑인 외에도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 인종이 보인다. 흑인의 분노를 넘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백인우월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민자와 소수인종을 범죄자 취급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10만 명 이상의 흑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노약자가 사망하도록 방치했다. 이는 이민자와 노약자를 서구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고 이들을 추방 또는 말살해야 한다는 백인우월주의자 주장의 연장선에 있는 행동으로 해석된다.



시위대와 대화 노력 보이는 LA 경찰

둘째, LA에서는 시위대가 백인 부촌인 웨스트할리우드와 베벌리힐스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백인 부촌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인종 폭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폭동은 흑인 지역에서 시작돼 주로 흑인 지역 상가를 불태웠다. 1992년 4·29 때만 한인타운과 할리우드로 폭동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데오 드라이브, 그로브몰, 페어팩스, 멜로즈 등 백인 부촌에 약탈과 방화가 집중되고 있다. 특히 구찌, 루이뷔통 같은 명품 매장을 약탈하는 모습을 전에는 볼 수 없었다. 그동안 인종 폭동이 발생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던 백인 부유층에 ‘책임을 지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인이 인종 갈등의 핵심이며 책임지고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셋째, LA 경찰, 즉 LAPD가 1992년과 달리 통행금지 조치를 위반한 시위대를 즉시 체포했다. 초기 진압에 실패해 LA 폭동이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졌다는 교훈을 뼈에 새긴 조치다. 또 시위대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 백인 경찰관이 시위대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이 TV 뉴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왕왕 목격된다. 

마지막으로 LA 경찰당국의 인종 의식과 대처 방법이 1992년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1992년 데릴 게이츠 당시 경찰국장은 인종차별주의자였고, 흑인이 흑인 지역을 파괴하도록 방조했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 현 경찰국장은 시위대와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약탈자와 방화범을 적극 검거하는 양대 전략을 펴고 있다. 주 방위군이 즉시 투입된 것도 사태 안정에 도움이 됐다. 

이번 시위 사태로 LA는 다시 봉쇄됐다. LA 한인타운이 또다시 희생양이 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폭동은 또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슬픈 근본 모습이다.

장태한 UC 리버사이드 교수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44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