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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담화에 남북관계 기로…말없는 문대통령-김정은 메시지 ‘주목’

입력 | 2020-06-14 13:22:00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장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18.09.19/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확실하게 남조선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 하다”는 담화를 내면서 지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2년만에 중대 기로를 맞았다.

‘백두혈통’으로 대남파트에 전면으로 나선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하나에 문재인 대통령이 공들였던 남북관계가 휘청이면서 남북관계의 ‘약한 고리’가 드러난 것은 물론 청와대 안보팀의 대응 능력도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비난’에 나서며 남한과의 결별 선언을 한 이유로 꼽은 것은 “신성한 우리측 지역에 오물들을 들이민 쓰레기들”이라고 지칭한 대북 전단지(삐라) 살포와, “그런 망동짓을 묵인한 자”라고 지칭한 청와대 안보실과 주무부서인 통일부다.

◇北 문제삼은 ‘대북전단 살포’…南에 합의사항 위배로 ‘책임 전가’

지난 4일 김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대북 전단지 살포에 대해 맹비난을 시작으로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밝힌 대로 Δ2018년 판문점 선언 Δ2004년 6·4 합의서 Δ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이행 부속합의서 Δ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른 남북조절위 공동발표문 등 남북 합의 사항에 위배되는 행위다.

김 부부장이 대북 전단을 문제삼은 것은 남북 간 합의 위배는 남측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부는 김 부부장 담화 직후 “여러 차례 전단살포 중단에 대한 조치를 취해왔다”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미 합의 불이행의 책임을 떠맡은 상황에서 뒤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는 대북전단이 “백해무익하다”는 입장을 냈으나 이는 공식입장은 아니었다. 사실상 청와대는 김 부부장의 첫번째 담화에 대해 함구하며 분주히 상황파악에 나섰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9일에는 북한이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통신연락선)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특히 남북관계 화해의 상징이었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핫라인’(직통전화)까지 폐기하면서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가 입장을 낸 것은 김 부부장이 담화를 낸 후 일주일이 지난 11일이다. NSC 상임위는 당일 정례회의를 주재한 후 NSC 사무처장인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일부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을 계속 살포해 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13일 담화를 통해 청와대의 공식 입장에 대해 “언제 봐야 늘 뒤늦게 설레발을 치는 그것들의 상습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형식에 불과한 상투적인 언동을 결코 믿어서는 안된다”며 평가절하했다.

김 부부장이 더 나아가 군사행동까지 예고하자 NSC는 14일 새벽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김여정 말 한마디에 관계 ‘휘청’…남북 합의 신뢰 한계 드러나

김 부부장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각종 남북 간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면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 부부장은 4일 담화를 통해 Δ남북 연락사무소 폐지 Δ금강산 관광 폐지 Δ개성공단 완전 철거에다 가장 민감한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언급했다.

이어 북한은 9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단절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13일 담화에서는 “쓸모없는 북남공동련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예고했고, 이후 계획은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 한다”라며 군사행동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나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해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했다”며 일련의 행동이 곧 김 위원장의 의중이라며 힘을 불어넣었다.

2018년 4·27 1차 남북정상회담(평화의집), 5·26 2차 남북정상회담(통일각) 9월 3차 남북정상회담(평양)으로 이어진 남북 간 평화 무드가 북한의 수장이 아닌 김여정 부부장의 한 마디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취약 고리가 드러난 것이다.

김 부부장의 담화가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며 어려워진 북한 내 상황을 다잡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 부부장은 “세상이 깨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보자고 들고 일어난 전체 인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를 지금 날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내용 여론전에 수시로 남측을 이용한다는 점, 이용 수위가 군사합의, 핫라인 등 위험수위로 올라가는 점은 마냥 여론전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평화시대’를 연설했던 점을 고려하면, 김 부부장이 ‘전체 인민들’을 언급한 것을 단순한 ‘여론전’으로 치부하기에는 의미가 무겁다.

북한의 공세가 이어질 때마다 충분한 설명 없이 “입장을 내지 않는다”며 함구하는 청와대의 대응 능력도 문제로 지적된다. 북한이 남북 합의에 대해 ‘레드라인’을 밟기 전 적절한 대응 단계와 수위를 결정하는 단위의 판단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전면 대응 없는 김 위원장…문 대통령 ‘대북 메시지는’ 언제

한가지 주목할 점은 김 위원장의 행보다. 김 부부장이 대남 강경 행보에 나서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공식 행보는 지난 7일 정치국 회의 주재다.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북한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 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이 마지막이었다.

이에 오는 15일,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나올지 주목된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 선언이자, 8·18 광복 이후 남북 정상이 합의해 발표한 최초의 선언인 만큼, 선언의 정신을 존중하며 현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자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정상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의 물꼬를 트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북한의 대남 공세 수위를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김 위원장이 응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