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워낙 독주를 즐기다 보니 소주를 더 독하게 마시는 방법도 만들어졌다. 소주를 한 번 더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환소주(還燒酒)가 그것이다. 정조 때 권신 이갑이 쓴 ‘문견잡기’는 “청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환소주를 대단히 좋아하지만 한번 마시면 목구멍을 찌르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마시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썼다.
실록과 고서에는 소주를 먹고 경을 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이방우는 임금(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인데,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하였다.” “명종 때 김치운은 교리로서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다가 임금이 내린 자소주(紫燒酒)를 지나치게 마셔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소주의 해독은 참혹한 것이다.”
소주는 조선시대 각종 질환의 치료약으로도 쓰였다. 성종 때 권신 홍윤성은 금주령을 어기고 소주를 먹다 붙잡혔지만 술을 즐겼던 임금은 그를 너그럽게 용서했다. “비록 술을 금(禁)하더라도 복약(服藥)하는 것이 어찌 해롭겠는가? 대죄하지 말라.” 홍윤성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름 설사병 치료를 위해 소주를 먹어 죄를 묻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옛 의서인 ‘양생요집’에는 “술은 약재로 적당히 마시면 모든 맥을 조화시키고 나쁜 독을 물리치며, 차가운 기운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고 쓰여 있다. 실제 옛 의사들은 신체 이상에 약재 대신 술을 가지고 치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옛 조상들은 숙취를 어떻게 해소했을까. 동의보감은 오이나 칡즙, 녹차가 소주 독을 제거하는 효용이 크다고 했다. 애주가들이 소주에 오이를 넣어 마시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녹차는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심장과 위장 운동이 활발해진다. 이뇨 작용도 강해 소변을 보면서 주독도 빠져나간다.
동의보감에는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게 하는 여러 가지 처방이 나온다. 만배불취단, 신선불취단, 취향보설이 바로 그것. 이 처방의 공통점은 모두 칡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칡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려 잎사귀로 수분을 증발시키듯, 술로 생긴 위장습열을 증발시킨다는 약리다. 말린 칡꽃과 팥꽃을 8g씩 끓여 차처럼 마시는 쌍화산은 가장 아름다운 ‘해장차’라 하겠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