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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감독 데뷔 정진영 “조진웅이 함께한다고 했을 땐, 덜컥 겁이 났죠”

입력 | 2020-06-16 06:57:00

결국 이룬 감독의 꿈. 정진영이 배우로서 살아온 30여년의 경험을 녹여내 영화 ‘사라진 시간’을 연출 데뷔작으로 내놓는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18일 개봉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영화감독 데뷔한 정진영

17살때 감독 꿈, 40년만에 이뤄
내 첫 이야기…발가벗겨진 느낌
또 미루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저축한 돈 털어 제작사도 꾸렸죠

배우 정진영(56)이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감독의 자리에 선다.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낯익은 얼굴의 연출 데뷔. 배우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차수연 등과 손잡고,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화재사건, 이를 수사하는 형사와 마을 사람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렸다. 직접 각본을 쓰고 공동제작자로서도 이름을 올린 정진영의 면모가 낯설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이야기가 신선하다는 평가 속에 정진영이 이제 관객을 만날 시간을 맞고 있다. 그를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라는 긴장감과 달리 말투는 무던했다.

# 나는 뭐지?

세는 나이로 40년 만이다. 17살 때 꾸었던 꿈. 하지만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이었다. 2017년 고교 3년생 아들을 바라보며 ‘20여년 가장으로 살았지만 그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난 뭐지? 예술가로 살기를 바라왔다.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엔 예술가란 모름지기 무언가에 도전하고 어려움을 돌파해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연기가 아닌 다른 작업을 해보자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자본이 필요한 게 현실. 그걸 책임질 수 없다면 작은 영화로부터, 관습적이지 않게, 자유롭게 해보자 다짐했다. 단, 진심을 갖고!

이제 그 이야기를 꺼내놓게 됐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가 이야기 속에 있을 테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촬영현장에서 정진영이 슬레이트(일명 딱딱이)를 치며 연기 지시하는 모습.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판이 커짐

(조)진웅이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를 주인공으로 떠올리긴 했지만, 현실이 될 줄이야! 덜컥 겁이 났다. 감당할 만한 감독에게 미룰까 고민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잖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걸”이라는 아내의 말에 ‘꼭 가야 할 길은 아니지만 안 갔으면 후회할 그런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저축한 돈으로 밀고 가기 위해, 딸을 낳으면 붙여주려던 ‘다니’라는 이름의 제작사도 꾸렸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아파트에 달랑 책상 하나를 들이고 진웅이를 맞았다. 첫 시나리오 독자였다. 2017년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호흡을 맞췄던 그가 회식 자리에서 이를 ‘폭로’하지만 않았던들, 판은 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정진영 선배가 영화 연출 데뷔하십니다. 제가 출연합니다”고.

투자배급사가 투자를 결정했다. “새로움”이라며 더 많은 관객에게 내어보이자 했다. 상상하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판이 커지고 말았다.

# 빚만 남음

‘선배라고 해서 도우려는 거지?’라는 말에 “제 대사에서 토씨 하나 고치지 마세요”라고 답하는 진웅이의 모습에서 확신을 얻었다.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일했다. 스태프도 최소한 대가로만 힘을 모아줬다.

1990년대 중반 연출부원으로 받아들여준 ‘초록물고기’ 이창동·‘약속’과 ‘와일드 카드’의 김유진·‘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등은 완성본을 보고 한 마디씩 보탰다. 스승과도 같은 분들이다.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는 잘 썼지만 개봉하면 욕 들을 각오도 해야 해”라고 말했다.

시사회에서 웃어준 이들과 관객의 뜻하지 않은 반응. 고맙고 또 고마웠다.

모두 빚으로 남으리라.

배우 정진영.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다시, 나는 뭐지?

그동안 배우로서 하고 싶은 걸 많이 해왔다. 다른 직업이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 ‘내가’ 아닌 ‘남’이 된다는 것, 그 극적인 상황들. 아마도 이번 영화에도 그런 요소가 이것저것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 새로운 것이 어디 있다던가. 그저 나를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실제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럼 정말 나는 무엇인지 스스로 물을 수 있다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자문할 수 있다면, 괴롭지만 또 그것대로 재미있는 삶이 될 것 같다. 대학시절에야 기타를 배웠다는 산울림 김창완 선배의 말처럼, 연출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나야말로 내 방식으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놓인 나를 이제 펼쳐 내어보자 싶었다.

듣다보면 하룻밤이 금세 지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 정진영

▲ 1964년 10월16일생
▲ 서울대 국문과 졸업
▲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
▲ 1991년 독립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 1992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 이후 ‘약속’(청룡영화상·대종상 남우조연상) ‘달마야 놀자’ ‘황산벌’ ‘와일드 카드’ 등 흥행
▲ 2006년 ‘왕의 남자’ 1000만 관객
▲ 2016년 홍상수 감독 ‘클레어의 카메라’, 2018년 장률 감독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등 예술성 짙은 영화 참여
▲ 2020년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가족입니다’ 출연 중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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