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0일 “진보학자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지은 적은 없고, 그런 구분에서도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돼 2010년 정년퇴임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 변동 주체와 관련한 논쟁을 주도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중 한명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진보(進步).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 또는 그 세력. 지금 그들은 얼마나 그에 부합하고 있을까. 권력과 결합한 진보가 더 이상 진보적이 될 수 있을까.
―상대를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뒤 진영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적과 동지를 날카롭게 구별하고 흑백, 선악으로 나누는 지금 진보진영의 성향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됐다. 그게 지금까지 유지돼 보수를 파트너가 아니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본다. 진보·보수가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서로 존중하며 발전해 가는 게 민주주의인데 일종의 정복 대상으로 보는 거다. 적폐 청산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어떤 말로 포장해도 본심은 이번 기회에 저 집단, 저 정당을 확실하게 쓰러뜨리자는 것 아닌가. 총선 압승으로 민주당은 평소에 내재된 이런 욕구를 더 거리낌 없이 드러낼 것 같다. 당분간은 누가 막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에는 진영 논리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YS는 극좌로 분류되던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전 의원을 영입하고, DJ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지 않았나.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5월 한상진 서울대 교수에게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면 되는데 민주당 안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건 자살 행위이고, 하나로 끝나지 않고 둑을 무너뜨릴 거라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왜 저렇게까지 우기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변을 한다.” (당신은 민주당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민주당이 2012년 18대 대선에서 패한 뒤 내가 대선평가위원장을 하면서 속을 봤으니까.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심하다. 책임윤리가 없다고 하는 건 그나마 좋게 표현한 거다. 자신들은 항상 선한 의지, 좋은 목적으로 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잘못의 원인을 늘 밖에서 찾는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늘 일어나는 게 정치다. 그걸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면 되는데 민주당은 상대가 나쁘게 해서 잘못된 거라고 적에게 책임을 씌운다. 그러니 모든 게 적폐청산식으로 가는 거다. 조국·윤미향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있지 않나. 왜 저렇게까지 억지 강변을 할까 하는 것. 약간의 실수는 있지만 책임질 일은 없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이대로 가면 진보권위주의를 넘어 진보독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진보독재는 좀 많이 나간 느낌인데….
“최근 세계 30대 대도시 시민의식을 조사했는데, 거의 대부분에서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더 국가권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진보는 통상 국가권력이 과도해지는 걸 반대하지 않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는 인권, 다원성, 약자·소수자와의 공존,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등의 쪽에 선다. 보수는 국가권력과 국가의 이익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데 코로나19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진보의 성향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나.) “아직은 가설이지만…. 진보는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와 갈등을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고 경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엄청난 장애인데 이걸 극복하려면 국가가 강제로 시민의 생활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원래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면 진보는 저항하는 게 맞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적을 극복할 주체가 국가밖에 없다 보니 그 권력을 강화하고, 통제가 심화되는 것을 옹호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는 거다.”
―코로나19가 민주당의 독주에 더 힘을 실어줄 거라는 건가.
―DJ와 인연이 깊나.
“1988년부터 DJ를 도왔으니까…. 당시만 해도 국립대(서울대) 교수가 그것도 DJ를 공개적으로 돕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만류를 많이 했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정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돕기는 한다. 하지만 학자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나로서는 일종의 금도라고 할까….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9월경인데 DJ 사저에서 공부모임을 할 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달라고 했다. 이번에 될 것 같은데 제발 나를 정치에 부르지는 말아달라고….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약속하지’라고 하더라. 그 뒤로도 청와대 참모진에게서 의사타진이 왔지만 DJ가 약속했다는 말로 다 거절했다.”
―지금처럼 권력과 진보세력이 한 몸이 되면 권력에 대한 저항은 누가 하나.
“공백까지는 아니지만 그 부분이 큰 빈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지금 진보 시민세력은 정치권력과 같은 패가 돼 움직이는 면이 있으니까. 지금 권력과 함께 움직이는 진보 시민단체를 관변단체라고 못 부를 이유가 없다. 스스로는 진보라고 하지만…. 이제는 시민사회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역으로 보수가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서 시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난 나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지은 적이 없다. 그런 구분에서 벗어나고도 싶고…. 단지 사람들이 진보라는 범주 안에 왜 나를 포함시키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다.” (왜 포함된 건가.) “유학을 마치고 1981년 서울대에 왔을 때 학생운동이 대단했다. 이념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인 학생들과 젊은 지식인이 많았는데 당시 대부분의 교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문적인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난 그런 부분에 대해 논문도 쓰고 공부도 좀 해서 서로 논쟁이 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정통 진보 쪽에서는 나를 보수는 확실히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들과 같은 진보 유형은 아닌데 그래도 대화는 되는… 그런 정도의 사람으로 봤다. 그러면서 점차 진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된 것 같다. 내가 보수는 아니지만, 학생운동이나 진보적인 생각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해는 하면서도 비판할 건 비판하는 입장이라 할까…. 그렇다 보니 정통 진보 쪽에서는 나를 늘 물음표를 붙여서 봤다. 개량진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진보가 인권, 약자와 소외된 집단 등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대변하고 싶다면… 서로 비판할 건 비판하고, 그 비판에 대응하면서 발전하는 것 아닌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