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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전투[임용한의 전쟁史]〈114〉

입력 | 2020-06-16 03:00:00


세계사를 바꾼 전투라고 하면 많은 전투가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전투치고 세계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전투가 없다. 카이사르가 알레시아에서 패배하고, 로마가 갈리아 정복에 실패했다면, 워털루 전투가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났다면, 만약 게티즈버그에서 남군이 승리했다면 우리가 아는 미합중국은 없고, 미국은 여러 개의 국가로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다. 가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면 20세기의 운명을 좌우한 결정적인 전투가 있다. 1914년 8월에 독일과 러시아군이 맞붙은 타넨베르크 전투다. 독일군은 병력으로 7 대 4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을 섬멸했다.

러시아군은 1, 2군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독일군은 1, 2군 간의 협조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전초전을 벌여 1군을 고착시킨 뒤에 그들의 눈앞에서 거의 전 병력을 빼내 2군 앞으로 이동시켰다. 독일군의 공격에 2군은 대패하고 지휘관 삼소노프는 자살했다. 홀로 남은 1군은 전투를 포기하고 철수했다. 독일이 잡은 포로만 9만5000명이었다. 이 패배의 충격이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반면 독일군 총사령관 힌덴부르크는 민족 영웅이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어떤 이는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히틀러도 없었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20세기의 운명을 바꾼 전투임이 분명하다.

독일의 대담한 각개격파 전술은 여러 가지 전설을 낳았다. 하지만 이 승리의 진정한 배후는 러시아군이다. 러시아군의 전술도 그 나름대로 훌륭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그런 전술을 실행할 준비도 안 됐고,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알지도 못했다. 반면 독일군은 부단한 훈련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실행 능력을 체득했다. 독일이 제련, 주조 기술을 연마해 쇠뭉치를 칼로 바꾸었다면 러시아는 머릿속으로 칼을 그리며 쇠뭉치를 내어 놓은 셈이었다. 이상이란, 현실이라는 불에 넣어서 녹이고 다듬어야 제품이 된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