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최대의 재앙이었던 스페인독감은 1918년 봄 유럽에서 시작해, 9∼11월 세계적인 2차 유행을 거쳐, 이듬해 초 3차 유행으로 끝났다. 사망자 수는 5000만∼1억 명으로 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의 2∼4배였다. 당시 조선도 인구의 38%(288만4000명)가 ‘서반아 감기’에 걸려 14만 명이 사망했다. 조선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때는 9월, 스페인독감 2차 유행 시기였다. 전국적으로 절정에 달한 때는 10월이었는데 농촌에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 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북반구에서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는 여름이 되면 남반구에서 유행하다 가을에 북반구에서 재유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봉쇄를 완화한 곳곳에서 환자가 속출하면서 2차 유행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는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56일간 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던 중국 베이징은 최근 5일새 106명이 쏟아졌다. 인도는 한 달 전 300∼400명이던 일일 신규 환자가 2000여 명으로 폭증했다. 미국에선 22개 주에서 환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윌리엄 셰프너 밴더빌트대 교수는 “2차 유행이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국내에선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지난달 6일 이후 수도권 환자 수가 0명에서 1069명으로 급증했다. 생활방역 전후로 R값이 0.45에서 1.79로 뛰어 다음 달 2차 유행이 온다는 예측도 나왔다.
▷2차 대유행의 경고음에도 많은 나라가 경제 때문에 2차 봉쇄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독감 때는 한 국가 내에서도 치명률이 달랐는데 지방정부가 일찌감치 개입해 위험시설을 폐쇄하는 등 과감한 거리 두기 정책을 시행한 곳이 피해가 적었다. 그때와는 100년의 시차가 있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도 거리 두기 이상의 묘수를 떠올리기 어렵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