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달 너머로 달리는 말’ 펴낸 김훈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시공 설정 원고지 앞에 있는건 언제나 고통
약육강식, 우리시대의 야만 코로나사태가 심화시킬까 우려”
소설가 김훈 씨는 “역사가 온통 싸운 이야기다. 세상을 가득 채운 그 적대, 폭력, 야만의 뿌리를 찾아가 보고싶었다”고 말했다. 뉴스1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사진)을 출간한 소설가 김훈 씨(72)는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태아와 같은 세상의 발생 초기를 그리려다 보니 인류사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공간을 설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설은 인간과 자연이 뒤엉켜 있는 미지의 시공간 속 두 나라 초와 단의 전쟁 이야기가 중심이다. 유목적인 초, 농경적인 단의 충돌 속에서 문명이 태어나고 수많은 생명이 짓밟히고 저항하며 죽고 태어난다. 특히 말(馬)은 인간의 야만과 문명을 감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적이면서도 힘 있는 단문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 더 간결하고 신화적인 언어를 썼다. “화가가 물감을 쓰고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언어를 쓰면서 지금껏 없던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시공을 열어보려는 욕망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이 역사의 시공간을 완전히 벗어나고 언어가 역사적 경험을 넘어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원고지 앞에 있는 건 언제나 고통이고 후반부를 쓸 무렵 건강이 나빠져 힘들었다”는 그는 우리 시대의 야만으로 주저 없이 약육강식을 꼽았다. “모든 혁명이 결국 약육강식을 견딜 수 없어 벌어졌는데 그 운명을 돌파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 등이 약육강식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킬까 봐 우려도 했다. 그는 “이런 문제는 반드시 최하층부를 강타한다”며 “마스크 쓴 채 지하철로 몰리고 땀과 비가 섞여 다들 젖을 텐데 코로나보다 당장 올여름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선의, 자비심에 호소해 사회의 야만을 해결하려는 것은 유약한 방식이라며 “제도와 구조를 바로 만드는 수밖엔 없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