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이 넘치는 집’의 흑임자빙수.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작가
여름에는 놋그릇에 봉긋하게 담긴 흑임자빙수가 제격이다. 빙수 한 그릇에 절정의 맛과 영양을 담기 위해 매일 새벽 방앗간에서 흑임자를 볶고 곱게 제분한다. 동틀 무렵 가마솥을 걸고 4시간가량 팥을 뭉근하게 쑨다. 이때 온도를 잘 맞춰야 국산 팥의 달콤 쌉싸래한 풍미와 통통 터지는 팥알의 식감을 살릴 수 있다. 다음으로는 팥 위에 올릴 정과를 마련한다. 밤은 삶은 후 꿀에 쫀득하게 조려내고 대추는 바삭바삭 칩을 만든다. 빙수의 무게감을 잡아줄 흑임자 인절미도 중요하다. 국산 찹쌀을 빚어 갓 볶아낸 흑임자가루를 묻히면 깊고 고소한 풍미를 낼 수 있다. 그때쯤이면 특별 주문한 빙수용 얼음이 도착한다. 깨끗한 물로 만들고 위생적으로 관리돼 믿고 쓴다. 이 모든 재료는 딱 하루 쓸 만큼 마련한다. 요즘은 눈꽃빙수가 대세지만 이곳은 얼음 빙수를 고집한다. 더욱 예스러울 뿐 아니라 흑임자와 팥 맛이 청량하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카페 한쪽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쓴 목재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근거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 전통 디저트를 만들면서 가슴에 새기는 글이라고 한다.
빙수를 한입, 한입 떠먹다 보면 곱게 갈린 흑임자가 얼음물로 섞여 든다. 그 아래는 우유가 기다리고 있다. 얼음이 우유를 담백하게 하고 흑임자에 팥까지 녹아들면 ‘흑임자 라테’가 된다. 냉면 육수를 마시듯 양손으로 놋그릇을 잡고 벌컥벌컥 들이켜면 가슴에 남은 갈증이 시원하게 해갈된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강정이 넘치는 집=서울 강남구 학동로 435,흑임자빙수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