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관련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보수단체 지원을 강요했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1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이정환·정수진) 심리로 열린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헌법적 의미나 우리 사회 공동체에 미친 영향은 대법원의 판결로 충분히 확인됐다”고 구형 의견을 밝혔다. 함께 기소된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최후진술을 통해 “재판장님과 배석 판사님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며 “아무쪼록 관대한 처벌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관련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전 실장 측 변호인은 “김 전 실장의 지시 행위는 비정상적으로 편중된 정부 보조금 등을 조정하기 위한 정책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강요죄 부분이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에 대폭 감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의 사례를 언급하며 “현대중공업이 요청 없이 정의연에 10억 원을 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전경련 지원은 재량을 가진 업무였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피고인은 82세로 여생을 예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피고인에게는 사형이 선고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현 전 수석은 “쇠약해진 심신을 가다듬고 지난날을 돌아보니 잘못이 선명히 떠올랐다”며 “국민 봉사자라는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여러 피해를 입힌 점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선처를 요청했다.
김 전 실장 등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은 오는 26일 오후 1시 50분에 진행된다.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4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관련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앞서 재판부는 지난 4월 29일 진행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6명의 결심 절차를 진행한 바 있다. 다만 김 전 실장과 현 전 수석은 한 차례 변론을 더 진행해 달라는 변호인들의 요청에 따라 두 번째 공판인 이날 구형이 이뤄졌다.
검찰은 조 전 수석과 허현준 전 행정관, 오도성 전 국민소통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또 박준우 전 정무수석과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스1
한편 김 전 실장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전경련을 상대로 어버이연합 등 21개 보수단체에 총 23억8900여만 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김 전 실장의 혐의 가운데 강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1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직권남용죄는 인정되지만, 강요죄는 무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서한길 동아닷컴 기자 stre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