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개척하는 청년창업가들] <16> 벤처기업 그린랩스 신상훈 대표
고된 농사일을 데이터와 AI에 맡기고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농부는 지식노동자로 변신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영에 집중하는 세상. 국내 첨단농업 신생 벤처기업 ‘그린랩스’가 그리는 미래 농업의 모습이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40)는 “사람보다 데이터와 AI가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미 확인됐다”며 “머지않아 ‘데이터 농업’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린랩스는 농업에 첨단기술을 접목한 국내에선 드문 ‘애그테크(AgTech)’ 기업이다. 전자책 ‘리디북스’와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아만다’를 창업했던 신 대표와 소셜커머스 업체 ‘쿠차’ 창업자 출신 안동현 대표, 최성우 대표가 2017년 5월 함께 차렸다.
그린랩스는 사람에 의존하던 농사일을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팜 솔루션 ‘팜모닝’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모든 작물은 생장시기에 따라 온도, 습도, 일사량 등 최적의 생육환경이 정해져 있다. 기존 스마트팜 대다수는 농부가 이런 환경을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 데 그쳤다. 온도를 얼마나 올리고 내릴지, 환기를 해야 할지 등은 전적으로 농부가 경험에 의존해 결정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수많은 장비를 동시에 조작해 원하는 온도나 습도를 맞추기도 쉽지 않은 데다 자칫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위험이 있었다.
그린랩스는 이런 한계를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로 보완했다. 농장에 설치된 100여 개의 센서를 통해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농업 전문가 자문과 관련 논문들을 바탕으로 만든 생육환경 데이터를 제공해 농부가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농부가 적정 온도와 습도 등을 설정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수많은 장비의 자동 제어도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기존 스마트팜은 수동 조작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리모컨’에 불과했지만 그린랩스 솔루션은 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린랩스 솔루션을 도입한 농가는 700여 곳. 그린랩스에 따르면 생산성 향상을 통해 매출이 늘어나는 농가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솔루션을 활용해 베트남 현지에 딸기 농장을 지은 농가도 나왔다. 충남 천안시에서 7년째 딸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두호 씨(54)는 베트남에서 국산 딸기가 고가에 팔린다는 걸 알고 현지 진출을 고민하던 차에 그린랩스 솔루션을 접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현재 천안에 머물면서 베트남 농장 상태를 확인하고 제어하고 있다. 그린랩스 솔루션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 작물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 결과, 병충해가 50%가량 줄었고 그만큼 농약 사용량도 줄었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을 세계적인 농업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었다. 한국 땅은 너무 좁은 게 아닐까. “네덜란드는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데 세계적인 농업 강국이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하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