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어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문재인 대통령 비난 담화에 대해 “몰상식한 행위이며 북측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라”고 했다. 이어 “이런 사리분별 못 하는 언행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의 6·15선언 20주년 기념 발언을 ‘철면피한 궤변’ ‘변명과 술수’ 운운하며 비난한 김여정을 정조준한 것이다. 청와대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조로 대북 비판 수위를 끌어올리면서 국방부와 통일부도 북측 상대역인 총참모부, 통일전선부의 비난 담화에 맞대응했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어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지구에 군부대를 다시 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을 부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마저 백지화하겠다는 협박이다. 그런 북한의 속내를 일부 드러낸 게 김여정이 그제 내놓은 장문의 대남 비난 담화다. 김여정은 지난 2년간 우리 정부가 남북 합의보다 한미동맹을 우선했고 대북제재의 틀을 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의 ‘비’자는 한마디도 없었다. 더 이상 비핵화에 매달리지 말고 북한 편에 서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을 설득해 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고 제재는 지속됐다.
정부 일각에선 이번 대남 도발은 김여정이 주도하고 있으니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도모하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듯한 북한의 강경노선은 급선회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심하지 않는 한 이벤트식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결국은 쳇바퀴만 돌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북한 비핵화를 확고한 목표로 재확인하면서 대북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새로 짜야 할 시간이다.